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혀노블 Jun 20. 2024

권고사직과 정리해고의 차이

신임 대표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권고사직을 제안한 지 불과 3일 만의 일이었다.

초조한 건 내가 아닌 그였는지 3일 사이에 심경의 변화는 없었는지 물어왔다.

동료들이 속절없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혼자 남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간파당한 것 같았다.

나 역시 휩쓸리 듯 그만두어야 맞는 게 아니냐고 묻는 것도 같았다. 

나는 아직 후속 일자리가 준비되지 않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다.

남편이 아프기 때문에 생계가 달려있어 그만두기 어렵다고 내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신임 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고, 미리 써 온 대사를 읊듯 말했다.

"차장님이 처해있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회사 역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진행해야 합니다."

정리해고라는 카드가 회사에게는 지금의 이 상황을 정리해 줄 마법의 치트키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다시 되물었다.

"권고사직과 정리해고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내가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는 듯이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권고사직은 합의에 의해 직원이 동의를 하고 회사를 퇴사하는 것이고, 정리해고는 회사에서 서면으로 50일 전 해고 통지를 하면 그 통지를 받고 회사에서 퇴사하게 되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내 발로 나가는 것이냐, 회사에서 내보내는 것이냐의 차이 정도라고 말하는 듯했다. 

"정리해고를 당하면 저는 월급도 받을 수 없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나가야 하는 건가요?"

하고 물으니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내가 남아있는 동안 나에게 월급을 줄 것이고, 퇴사할 때는 퇴직금도 준다고 했다.

다만, 출근을 하지 않아도 퇴직 위로금이 나오는데 굳이 수고스럽게 출근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뉘앙스로 말했다. 

출근은 사실 지금의 나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출근이고, 한 달 치 위로금을 받고 쉬는 상황을 원했던 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그럼 그 정리해고 대상이 확실하게 저로 정해진 건가요?" 하고 물었다.

아까는 나를 정리해고 대상으로 못 박듯이 얘기하더니 이번에는 한 발 물러서며 대답했다.

내가 아직 정리해고 대상이 된 것은 아니고, 정리 해고를 진행하게 되면 대상을 선택해서 통보를 하게 된다고 했다. 

나만 회사를 나가주면 굳이 정리해고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가지 않겠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과 한 번 더 저울질해 보고 다른 사람을 정리 해고 대상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나를 비롯해 추가적으로 몇 명을 더 포함시켜 함께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뜻인지' 질문을 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쨌든 월급과 퇴직금이 나온다면 정리해고가 권고사직 보다 더 나은 점은 무엇인지 딱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리해고 통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