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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혀노블 Jul 02. 2024

회사와 헤어질 결심

권고사직서를 받고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사무실에 나 혼자 뿐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많은 인원이 회사를 떠났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위화감을 주었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분노와 억울함에 적당히 공감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나처럼 권고사직서를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자신은 그 대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릴리즈를 겨우 2주 앞두고 있던 신규 개선 프로젝트는 당연히 중단되었다.


회사의 방향은 매출이 발생하는 기존 사업 유지를 위해 최소의 인원만 남기는 것이었기에, 디자이너도, 개발자들도, QC인원과 마케터들도 회사를 나갔다.


신규 기획 업무를 담당하던 나도 회사에 남아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럼에도 회사에 출근하면 책을 읽거나 구직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자칫 그 행동이 내가 권고사직의 대상에서 정리해고 대상으로 바뀌는 적당한 빌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평소처럼 출퇴근 시간도 잘 지켰다.


내가 그나마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건 개인 채팅창으로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알리고 지금 내가 회사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채팅창이 아닌 회사에서 그렇게까지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한 동료들은 모두 떠났고, 남은 동료들은 자신의 발에 언제 불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이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했지만 회사 내에도, 회사 밖 계열사에도 아는 사람이 몇 안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남아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이 없고, 남겨진 관계 때문에 망설일 필요도 없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회사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10년 넘게 만났던 연인도 하루아침에 남이 되는 세상인데, 왜 회사를 두고 미련을 못 버리는 거야?


항상 옆에 있어서 고마움을 몰랐던 존재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나를 떠나겠다고 하면 붙잡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듯,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느껴지던 회사와 이별이라는 생각에 막연히 불안했던 게 아닐까?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님은 책에서 '자신이 일상을 보내던 곳을 떠나면 그곳에 두 발 담그고 있을 땐 보이지 않고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드러난다. 어떤 것의 온전한 의미는 부재 혹은 결핍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월급이 아쉽다는 생각 이외에 일하면서 의미를 찾았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도 안나는 지금 이 시점에 한 템포 쉬어들 상황이 더 나빠지기야 하겠어?


헤어질 결심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버티기가 아니라 용기를 내 회사와 헤어질 때인 것 같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벗어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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