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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혀노블 Jul 05. 2024

퇴사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법

퇴사를 마음먹었건만 평소에도 결정장애가 있던 나는 이것이 과연 옳은 결정인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선택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회사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선택들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붙었던 용기가 사그라들었다.


빈 종이를 꺼내고 가운데 세로줄을 길게 그었다.


그 줄의 왼편에는 '퇴사를 했을 때의 좋은 점'이라 적고, 그 줄의 오른편에는 '퇴사를 했을 때의 안 좋은 점'이라 적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선택의 순간, 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이 방법을 접했었다.


'종의 기원'을 쓴 유명한 찰스 다윈도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이 방법을 사용했었다는 내용도 함께 떠 올라 왠지 꽤 과학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윈이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더 많은 목록을 작성했음에도 결국은 결혼했다는 사실 또한 나중에 떠 올랐지만 말이다.


퇴사의 좋은 점

- 매일 아침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
- 아이의 등하굣길에 여유 있게 동행할 수 있는 것
- 얼마나 쌓였을지 모르지만 그 액수가 엄청 궁금했던 퇴직금을 손에 넣는 것
- 평일 아침에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 보고 싶지 않은 임원들(대표와 이사)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것
- 회사에서의 온갖 눈총과 어색함을 견디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
-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원할 때 할 수 있는 것
- 날이 좋을 때는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것
- 꼭 주말을 끼고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것
- 반차나 휴가를 내지 않고도 개인적인 업무(은행, 병원, 관공서)를 볼 수 있는 것
퇴사의 안 좋은 점

- 소속이 사라지면 나 스스로를 뭐 하는 사람인지 정의하기 애매해지는 것
- 카드 발급이나 통장 개설이 더 까다로워지는 것
-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외벌이가 되는 것
- 고민 없이 결제했던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끝내 사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기시감
-...


매직아이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심정으로 한참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더 이상은 쓸 문장이 떠 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회사는 내 하루의 시간을 의미 있게 쓰는 곳이었고 나의 정체성을 쌓아나가는 현장이었다.


빈 종이에 주욱 나열하고 보니 현재는 생계를 지키기 위한 수단 이외의 목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다시금 회사를 떠나는 것이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정리해고를 할 테면 하시던가' 하는 뉘앙스로 대차게 말하고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내가 먼저 면담을 요청하고 생각이 바뀌었노라 말을 꺼내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사람은 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 결정을 번복하는 이 이야길 언제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신임 대표로부터 세 번째 면담 메시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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