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둥 Nov 14. 2024

인연은 순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부터


 이와 웃은 자매다. 이가 언니고 웃이 동생인데, 둘은 언뜻 보기엔 자매보다는 친구 같다. 언니인 이는 키가 작고 동생인 웃은 키가 크며, 언니인 이의 눈은 똘망하고 동생 웃의 눈은 그윽하다. 이 언니의 코는 오똑하고 웃 동생의 코는 날렵하며, 언니 이는 한국 배우의 새침한 턱을, 동생 웃은 외국 배우의 이지적인 턱을 가졌다. 피부톤이나 말투 같은 것으로 둘의 공통점을 찾기엔 자매치고 너무도 은근하고, 요목조목 뜯어보면 더욱 아리송한 이와 웃.

 둘은 보이는 면 보다 느껴지는 면에서 확실히 닮았구나 하게 된다. 남들보다 예민하게 수용하는 공감각, 그리고 그것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섬세한 표현에서 이와 웃은 꼭 자매다. 인간이 각자의 특성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면 이와 웃은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감각기관을 가진 모양으로 그려질 게 분명하다. 촘촘히 표현하는 그들 덕분에 이웃과 함께하는 새로운 경험은 늘 즐겁다. 그들이 열어주는 풍부한 감상의 지평 덕에 내 감각의 세계 또한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웃이 또 닮은 점이 있다면 둘 다 여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꼽고 싶다. 나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문 두드리는 이를 반기는 쪽이라면 이웃은 울타리 밖에서부터 “계세요?” 하고 외치는 타입이다. 열린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문을 두드리고, 닫힌 문을 열리게 만들어 인사하는 쪽. 그날 우리가 만나자마자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웃의 여는 성질, 그 덕분이었다.



 봄 비가 촉촉이 내리고 갰다. 점심을 막 지난 시간. 나는 저녁 장을 보러 마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늘 가던 곳이었지만 우연히 특별한 일이 벌어질 때 쓰는 마법의 어구, ‘그날 따라’를 이 타이밍에서 붙이자면, 나는 그날 따라 늘 가던 길이 아닌, 조금 돌아가야 하는 골목으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이사 온 지 6개월 만에 처음 가보는 곳. 골목은 얕은 언덕을 따라 이어졌는데, 드문드문 밭이었고 군데군데 새로 올린 상가주택이 몇 채 있었다.

이런데가 있었구나.  하고 골목 끝에 다다를 즈음 나무로 된 주황색 문이 눈에 들어왔다. 잔디로 앞마당을 낸 하얀 건물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문이었다. 주황색 문에 이끌려 다가가서, 작게 난 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의 손길로 그린 엽서만 한 그림 여러 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미술학원인가 싶었다. 이제 막 자신의 색을 입히는 중인 듯 보였지만 학원이라는 단어가 담기에는 너무도 영혼의 색이 짙은 곳. 카페인가? 공방인가? 그 공간에 사로 잡힌 것은 시선이었다가 이내 마음이 되는 데에 단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 예쁜 곳은 벌써 누가 다 차지했어.‘

슬슬 작업실을 열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런 거였다. 그보다는 후에 따라오는 궁금증이 훨씬 더 컸다. 주황색 문이 달린 그 공간. 나보다 조금 빨라서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한, 나 말고 예쁜 자리를 알아본 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약간의 샘을 느끼며 이미 멋진 그곳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는 갈 길을 가려 몇 발자국을 떼었더니 하얀 건물의 또 다른 입구가 나왔다. 아직 누구의 차지도 아닌 곳. 빈 도화지 같은 공간 위로 순식간에 작업실 모습이 그려져 나는 조금 달뜬 기분이었다. 저 쪽이 아닌 게 아쉽지만 이 쪽도 꽤 근사하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겨있는 유리문 너머로 공실인 자리의 사진을 치밀하게 남겼다. 멀리에서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았다. 왼쪽에서 걸어가면서 보고 오른쪽에서 걸어가면서도 보았다. 물론 나는 마트에 가던 길이었으므로 이내 목적지를 잃지 않고 갈 길을 갔다. 마트에서는 사야 할 물건 목록을 까맣게 잊은 채 하얀 건물의 이 쪽 빈자리만 생각하며 카트를 끌고 빙빙 돌았다.

 장은 가볍게 보고, 역시나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골목을 들렀다. 다시 한번 이 쪽의 자리를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캄캄했던 주황색 문 안으로부터 노란빛이 스며 나왔다. 멋진 공간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비쳤다. 밖에서 기웃대는 나를 발견한 두 그림자의 주인들이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애기들 미술학원이에요!

  들어와서 구경하셔도 돼요.



 이해하기 쉬운 짧은 소개였지만,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나는 이곳이 그저 일곱 글자로 설명되고 말 보편적인 미술학원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과연 이 자리를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진짜배기였다. 일반적인 미술학원이었다면 나의 이웃으로 조금 망설였을지 모를 일이었으나 이들과는 재미있는 작업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꽃작업실을 구하려고 자리를 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도 꽃을 진짜 좋아한다며,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홀렸는지 그 순간 꼭 같이 하고만 싶었다. 그들은 자매였는데, 내가 또래 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더욱 반겨주었다. 격의 없는 이 자매와 만난 지 약 5분 만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왜 그 자리가 좋았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그 자리를 탐내던 이유와 정확히 같았다. 달뜬 기분이 증폭되어 마음속에서 커다란 물결이 넘실댔다. 나는 그 길로 전단지에 적혀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한 번 더 자리를 보러 갔고,

그렇게 우리는 714 -10번지의 이웃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