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혼자 살기를 결심한 날, 그로부터 200km쯤 떨어진 대전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부동산 어플을 켜는 것뿐이었다. 대충 훑어보아도, 지낼만한 곳들은 수중의 돈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아니, 그냥 서울의 집 값이란 절대 못 지내겠다고 생각되는 곳들 마저도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독립을 하겠다 마음먹었으니, 홀로 사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구하려는 집의 조건을 적어 내려갔다.
1. 안전할 것
2. 나의 모든 살림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일 것
3. 주차가 가능할 것
4. 친구들을 만나기에 어렵지 않을 것
5. 주변에 걸을만한 곳이 있을 것
6. 본가와 적당한 거리일 것
포털이 제공하는 부동산 사이트에서 친한 친구네 집 근처, 이미 살아봐서 익숙한 동네,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의 집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조건 1, 2, 3을 모두 만족하는 집을 찾기란 몹시 어려웠다. 함께 지도를 보고, 길을 가다 창에 붙은 부동산의 광고 시세를 보며 이 오피스텔이 괜찮다, 이 동네가 좋겠다 알아봐 준 친구들에게 아직도 고마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처음 부동산을 돌아보던 어느 추운 겨울날, 동행해 준 ‘공룡’에게는 ’ 스페셜 땡스 투‘ 를 전한다. 공룡이 없었다면 문득 무섭고 서러워 울어버렸을지 모를 그날의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방 어플에서 괜찮아 보이는 매물이 있어 연락했던 부동산. 들어설 때부터, 보통 떠올릴 법한 부동산 답지 않게 체계적이고 브랜드-뉴 적이었던 이 부동산은, 우리를 맡은 중개 담당자도 내 선입견 속의 복덕방 아저씨와는 달랐다. 그는 출중한 외모에 수려한 말솜씨를 가진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요즘 플랫폼의 변화로 부동산 업계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너무 번지르르해서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 아이러니라니. 나는 얼마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고인 물이었던가. 번지르르한 담당자는 우리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몇 번을 들었어도 헷갈리는 부동산 지식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요즘 부동산의 트렌드라며 비법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바로 ‘적은 돈으로 똑똑하게 좋은 집에 사는 법’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 고리타분한 나만 몰랐다는 비범한 방법.
그는 내게, 가진 돈보다 훨씬 많은 빚을 내어 넓고 새로 지은 신축 빌라에 살을 것을 권유했다. 대출 이자 중 일부를 생활비 명목으로 지원해 주니, 부담될 것이 없다며. 방법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는 게 바보라며. 자신의 여동생도, 제일 친한 친구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정말 나만 몰랐던 걸까. 그들이 왜 나의 대출 이자를 지원해 준단 말인가. 이유는 알겠다 해도, 금리가 얼마나 높아질지 누가 알며, 그 뒷감당은 나의 몫인 부담은 왜 설명해주지 않는가.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라지만, 세상 누구도 남에게 돈을 거저 주는 법은 없다는 것쯤은 알게 된 것이 서른네 살의 다행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눈 깜짝하지 않고 하는 그는, 역시 내 고정관념 밖의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비법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모든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플에서 보았던 매물 대신 계속해서 새롭고 더 비싼 매물을 보게 되었다. 예산에 맞는 집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의 판단으로 이미 나는 똑똑한 방법으로 대출을 받을 사람이 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보여주는 집들은 모두 그런 대상이었다. 집들은 하나같이 번듯하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딘가 의뭉스러운 것이 그와 닮은 점이었다. 그는 한결같이 본인의 의도에 맞는 집을, 계획해 온 만큼 모두 보여주려 했다.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고집 때문에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우리는 범상치 않은 매물을 보러 다니느라 그의 차를 타고 모르는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게 되었다. 낯선 골목에서 으슥한 느낌이라도 들라치면 불쑥 떠오르는 검은 상상에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 몇 번. 상환하지 못한 빚 때문에 끌려간 공장 지대에서 트렁크를 열자 흉기가 잔뜩 나오는 상상.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어둠의 세력에 소리 소문 없이 팔아넘겨지는 중인 상상. 남편과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알’이 울다 지쳐 혼절하는 상상의 끝에 다다라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혼자만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만 남는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는 내가 바보 같고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실은 불안이 가득한 포르셰 뒷자리에 혼자가 아니라서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순간 공룡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몹시 든든했다. 그리고 웃겼다. 그리고 고마웠다. 진심으로. 나는 공룡에게 농을 반 담아 말했다. “팔려가기 전에 그만 가자.”
얼마 후 화곡동의 대규모 전세사기, 빌라왕의 죽음을 기사에서 보았다. 공룡과 함께했던 그날의 무용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들은 윤 언니는 두 번째 부동산 탐방을 함께 해주었다. 그녀는 얼마 전 공인중개사 시험을 당당히 합격한 명색의 업계 전문가였다. 언니와는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를 탐방 겸 돌았다. 흰 눈이 나부끼는 날이었다. 꽁꽁 언 부동산 문을 열 때마다 당차고, 간결하게 요구사항을 척척 말하는 언니가 정말 멋있었다. 연희동의 한 부동산에서도 아주 이상한 집을 보여주었는데, 집구조도 이상할뿐더러, 이상하리만큼 싸고, 이상하리만큼 오래 비어있는 집이었다. 언니는 문 앞에 붙은 명함과 쌓인 우편물들을 꼼꼼히 확인하더니 이런 집은 안 되겠다고 했다. 집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세상은 무서운 곳 같았다. 남의 돈 따위가 어찌 되든 괘념치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았던가. 부동산은 발품이라는 신념이 희미해져 갔다.
며칠째 핸드폰으로 서울의 온갖 곳을 둘러보고 있던 중, 윤 언니가 오래되어도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상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의 언니가 너무 똑 부러져서 나는 당연히 그 말을 들을 작정이었다. 추려진 아파트 가운데에는 친구들 만나러 몇 번 가 본 동네가 있었다. 대학 친구 라마가 “ 내가 서울 웬만한데 다 둘러봤는데 여기로 와. 살아보니까 서울 중심이랑은 좀 멀지만 그래서 집값도 그나마 낫고, 살기 괜찮아.”라고 했던 곳이었다. 라마는 합리적인 친구였으므로 나는 그녀의 판단을 신뢰했다. 직접 가봤을 때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 동네에서 본격적으로 알아본 부동산은 나의 고정관념 속의 그것이었다. 이번에는 십여 년 전 자취방을 구할 때처럼 영민, 숙경과 함께했다. 숙경 씨는 스무 살 딸아이의 혼자 살 집을 고르던 이전과 다름없이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챙겼다. 훌쩍 자라, 또다시 부모님을 대동하고 부동산을 돌아보게 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인 듯했다. 중개사 아주머니는 나와 영민 씨와 같은 성씨였다. 고모 뻘 될 것 같아 보이는 그녀는 친절하고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내가 갈만한 집과, 절대 들어가면 안 될 집들을 설명해 주셨다. 호시탐탐 코 베어 갈 궁리만 하는 것 같던 이 바닥에서,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에 온 것 같았다.
소개받은 집은 겉보기엔 엉망인 듯했지만 몇 가지만 손보면 지낼만해 보였다. 오래된 철재 손잡이, 나무 문틀에서 세월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찌 보면 예쁘기까지 한 집을 보고, 좁은 골방도 아틀리에가 될 수 있다는 김환기의 말이 떠올랐다. 감히 그의 예술성에 비할 수 없지만 창작의 꽃은 결핍과 고난에서 생생하게 피어난다는 것만은 사실이었으므로. 그 두 가지라면 나에게도 충분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배경으로 무언가를 피워낼 곳이라면 썩 어울릴 집이었다. 오래된 이 집에서의 새 삶을 꿈꾸며 나는 조금 벅찬 기분이 들었다. 계약하고 온 날, 비로소 쉴 곳을 찾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정말 오랜만에 단 잠을 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