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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Oct 24. 2024

이런 이사 본 적 있나요

 오전 8시가 아직 조금 남은 시각.


  안녕하세요, 이사인데요.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준비되셨으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네, 지금 올라오셔도 돼요.


 친구가 추천해 준 어플로 한 달 전에 예약해 둔 이삿짐센터. 오늘 처음 보는 이 아저씨에게 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  바로, 가지고 가야 할 짐과 남겨야 할 짐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짐을 싣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이 내게는 얼마나 중대 사안인가 하면, 이사가 가까워질수록 이 부분을 철저히 하느라 다른 감정들이 박제될 정도였다. 만약 굉장히 중요한 걸 빠트리고 가기라도 한다면? 오. 그건 조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 놓치는 짐이 있을 새라 이민이라도 가듯 짐을 꾸리던 몇 날 밤이 있었기에, 그 마지막 여정의 마무리는 가히 ‘임무’ 라 칭할 만한 것이었다. 반대의 상황도 있어서는 곤란하므로 꽤나 똑똑한 분별력으로 ‘수행’ 해야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제,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함께 해야 하는 나의 동지에게 오늘의 번거롭고 비일반적인 이사 행태를 자초지종 없이 설명해야 할 시간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저씨에게 남길 짐들에 대해 말하려니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키가 한 뼘쯤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 이런 식으로 짐을 두고 가는 이사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만 느끼는 겸연쩍음일 것도 분명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으므로. 그러나 의뢰인의 이사 스토리가 궁금해 멋대로 펼칠 그의 상상을 의식했던 걸까. 아무렴 별 수 없기도 한 생각들이 뭉근하게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필요한 것들을 잘 골라, 빠짐없이 챙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때.  나는 비장한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담담한 척 오늘의 임무를 전달했다.


  여기에서는 이 것, 이 것 빼고 다 실어주시면 되고요,

  여기에서는 이 것. 그리고 박스들은 다 실어주시면 되고.

  그리고, 이 방은.. 절대 문 열지 말아 주세요.


 복잡한 내 머릿속에 비하면 간결하고 어렵지 않은 요청이었다. 포장이사가 무색할 정도로 짐을 몽땅 싸 둔 덕에,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박스 몇 가지와 굵직한 가구들만 골라 실으면 됐다. 이렇게 무겁고 큰 것은 어떻게 옮길까 했던 것들도 분해하거나 요리조리 움직여 좁은 문을 통과해 나갔다. 나의 임무를 대리 수행하는 환상의 콤비는 어지럽게 뒤섞인 짐들 사이로 가져가야 할 것만 쏙 쏙 잘도 빼냈다. 이 정도쯤이야 경력이 지긋한 베테랑들에겐 그저, 빨대 없이 컵으로 들이키는 아이스커피에서 딸려 나오는 얼음 거르는 정도의 일인 듯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번거로운 이사에 걸맞게 차로 3분 거리의 작업실에 들러 2차 이사를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남겨야 할 짐이란 없어서 신경 쓸 일이 덜했다. 동지들은 꽤나 다양한 모양의 짐을 수월하게 옮기고, 잘 쌓았다. 이사의 베테랑인 그들은 알고 보니 입체 테트리스의 달인이었다.

 

 두 군데의 짐을 모두 싣고 나니 11시 남짓이었다.


 세 시간이면 충분하구나.


흔적을 남기는 데 걸렸던 시간에 비하면 거두는 데 드는 시간은 허무할 만큼 짧았다. 그래도 덕분에 남은 자리를 돌아볼 여유가 있어 다행이었다. 짐이 다 빠지고 텅 빈 작업실의 모습을 보니 박제되었던 감정이 꿈틀댔다. 헐값에 중고상에 넘기기로 한 냉장고만 코드가 뽑힌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처음 작업실을 얻을 때에도 다른 어떤 가구보다 일 등으로 들여왔던 냉장고였다. 작업실도 갖고, 냉장고까지 갖게 되었을 때 행복한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내가 스쳤다. 냉장고를 채우고 비워내기를 반복하는 동안 숱했던 고생의 순간, 희열의 순간, 좌절의 순간, 보람의 순간이 순서도 없이 떠올랐다. 묵묵했던 작업실의 존재 덕분에 숨 쉴 수 있었던 바로 엊그제까지의 순간이 아직 생생했다.


 막연히 이 작업실을 떠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대개 월세가 버겁거나, 건물주와 좁혀지지 않는 미의식의 갭이 느껴질 때 그랬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단발적이었고, 아마도 그 생각의 열 곱절쯤. 이 자리에서 우아한 꽃집 아줌마로 나이 드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작은 마당 한편에 정원을 꾸미고 이듬해에 더 번질 꽃들이 무엇일 지나 고민했던 게 불과 몇 달 전. 이런 작별은 생각할 리 없던 일상이었다. 지나치게 평온한 나머지 세상 일의 많은 부분이 예상 밖에서도 벌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잠시 잊은 채 살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판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한 줄 사이에 역전되는 주인공의 운명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고작 반년도 안되어 한 때 일상이라 부르던 날들은 다시 올 수 없게 멀어졌고, 매일 새로 경험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 그래서 더 갑작스럽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어디 이 것뿐이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마침내 오늘이다.


  여덟 평 남짓한 작업실을 마음에 담았다. 구석구석.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나의 분신이 오래도록 기억에서 바래지 않길 바라며. 몰래 불 꺼진 이웃의 공간도 지긋이 바라보았다. 화장실로 통하는 문만 열면 어떠한 장치도 없이 이웃의 공간이 나오는 특이한 구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축축한 점토냄새와 마른 물감 냄새가 이웃의 인사를 대신했다. 정원에도 갔다. 이웃과 함께 만들고 가꾼 정원이었다. 작년보다 한 층 튼실해진 클레마티스가 곧 한꺼번에 봉오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홀한 광경을 함께 보지 못할 것이 영 아쉬웠다. 시선이 닿는 것마다 지난날이 새록새록하여 발걸음을 잡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발걸음을 세게 붙잡는 것은 집에 있었다. 이삿짐 동지들을 서울로 앞세우고 나는 물에 젖은 솜뭉치를 품은 마음으로 굳게 닫힌 방 문을 열러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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