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Nov 26. 2024

가방이 바뀌었다고?

사소한 해프닝 앞에서 우리 같이 레벨 업!

 

 

강의를 앞두고 수업자료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모니터 귀퉁이에서 카톡 알림 창이 봉긋 솟아오른다. 엄마로부터 온 카톡. 아이 이름이 얼핏 보인 것 같아 곧장 카톡을 열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이가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마실 물을 통에 담으러 자리를 비웠다. 방과 후 학교 스탠드는 그야말로 아이들 가방이며 옷가지 집합소이기에 여러 명의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을 터. 물을 담아 돌아온 아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아차, 본인의 가방이 없어졌다.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쳤을 아이는 곰곰이 아까의 장면을 되짚는다. 자신과 비슷한 검은색 가방 하나가 떠오른다. 아! ○○○! 아니나 다를까 남아있는 검은색 가방에 그 친구의 물병이 끼워져 있다. 한참 망설이던 아이는 그 친구 가방을 대신 둘러메고 하교했다. 

 

강의가 늦게 끝나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아이가 엄마 집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가방을 바꿔 든 상태 그대로 영어학원까지 다녀온 아이가 그제야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을 터. 여러 번 카톡이 오가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아이에게 상황 설명을 한 번 더 들었다. 친구가 몇 반인지까지는 알지만 전화번호는 모르는 상황. 방과 후 수업 중의 일이었다면 담당 선생님께라도 연락을 해서 연락처를 구해볼 수도 있을 텐데 아예 모든 일정이 끝난 시각에 일어난 일이라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신 내일 가방을 바꾸면 될 거다, 그 친구도 너도 당황했겠다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퇴근 후 저녁 시간. 엄마 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며 오늘의 해프닝을 다시 나누었다. 내일 학교에 가서 그 친구의 반으로 찾아갈 것. 그 친구와 가방을 교환할 것. 만약 친구가 없으면 그 반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할 것. 필요하다면 담임 선생님의 힘을 빌릴 것... 무수한 방법들을 차근차근 읊으며, 괜찮다고 해결할 수 있다고 아이를 달랬다. 이번 기회로 네가 배우는 것이 분명 있을 거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한숨 돌리는데 얼마 전까지 다녔던 아이의 축구 학원 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말씀인즉슨, 아이와 가방이 뒤바뀐 것으로 예상되는 그 친구 아버님으로부터 혹 연락처를 구할 방법이 있냐는 전화가 왔다는 것. 세상에나. 상대편에서도 달리 상황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어 이리저리 궁리 끝에 아이가 축구 학원에 다닌다는 것까지 떠올렸겠구나, 그 간절함에 담뿍 공감됐다. 흔쾌히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버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서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단다. 정문 쪽에서 뵙기로 하고는 아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막 샤워를 마친 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나가긴 좀 그런가, 멋쩍어하길래 얼른 엄마가 다녀오마 말을 남기고 가방을 둘러맨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놀랐을 아이 친구를 위해 작은 과자도 챙겨서!

 

오도도 달려 도착한 아파트 정문. 친구 아버님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가방을 건네는데 어라? 아버님의 손이 비어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함이 얼굴에 퍼지는 찰나, "어... ○○이 말이, 가방이 제 것이 아닌 걸 알고는 다시 학교 운동장에 두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아뿔싸.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 때가 벌써 저녁 7시 30분. 모르긴 몰라도 5시간은 족히 밖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을 아이의 가방.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아이 학교로 내달렸다. (학교가 5분 거리여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어두운 학교 운동장. 핸드폰 손전등을 환히 켜고 스탠드를 쭉 훑었는데도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의 텀블러 하나와 겨울 조끼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이의 검은 가방은... 없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 길, 속상함과 억울함과 서글픔이 밀려왔다. 지킴이 선생님이나 학교 행정실 선생님들께 분실물 습득한 게 있는지 알아보라고 해야 하나, 가방 안에 아이의 중요한 물건은 없었던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내 쉬이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온몸을 훑었다. 이대로 낙담하기는 싫었다. 염치 불고하고 다시 친구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저희 아이 가방을 둔 정확한 장소가 어디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 아이와 아빠의 대화가 이어지더니 답이 들려온다. 축구 골대 근처 초록 그물이란다. 오! 아직 희망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다 말고 다시 방향을 틀어 학교로 내달렸다. 운동장 스탠드만 봤지 않는가. 축구 골대 쪽은 전혀 보지 못했다.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아이의 가방은 축구 골대 그물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그간 가방 안의 물병에서 물이 샜는지 바닥면이 조금 젖어있었지만 괜찮았다. 가방을 찾았다는 사실 하나에 날아갈 기뻤다.  

 

 

 

멀쩡히 돌아온 가방과 함께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사연)를 듣고 나서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친구의 가방을 가져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했었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러게, 그 친구도 그냥 가져갔으면 바로 교환했을 텐데" 나의 대답이 핀잔처럼 들렸을까, 아이가 대뜸 나를 쳐다본다. "근데 걔 잘못만은 아니지, 내가 애초에 가방을 거기 두면 안 됐었어." 

 

이번 사건으로 아이는 스스로 깨달음을 정리한 것 같았다. 가방은 꼭 들고 다니기. 방과 후 수업이 아닌 이상(축구 수업은 종종 운동장에서 이루어진다) 가방을 스탠드에 내려놓지 않기. 문제 상황이 당혹스러워도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씩 해결해 보기. 그리고 그 곁에서 나 역시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 사사로운 나의 말에 혹 비난이나 평가가 담겨있지는 않은 지 돌아볼 것. 

 

아이는 자란다. 이보다 더 한 해프닝들도 많이 겪을 것이 뻔하다. 내가 함께 해결해보려 해도 매번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곁에서 같이 고민하면서 내면이 깊이 자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 아이 곁에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설령 완전한 실패 앞에서도 무엇이 되었든 나름대로의 값진 보석을 캐낼 것 같은 이 아이 곁에서라면 말이다. 

 


 

   


   

 


이전 23화 무 밭에서 생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