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알림이 울린다. 네비게이션 화면 위로 [어디?] 짧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빨간 신호등에 멈춘 틈을 타 급히 답장을 한다. [다 와감. 곤피 ㅠㅠ] 피곤하다는 말의 애교버전. [ㅋㅋㅋ] 외마디 웃음이 돌아온다. [서우는? 자?] 벌써 9시가 훌쩍 넘었다. 아이는 잠 들었으려나 문득 궁금하다. [당근] 오가는 짧디 짧은 메시지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연애 중이었더라면 이 단촐한 이 메시지들을 골똘히 살피고 해체하며 잔뜩 서운해 했으려나.
‘어디?’는 사실 ‘늦었네. 어디쯤이야? 배는 안 고파?’ 같은 무수한 질문과 염려가 녹아있는 말이다. ‘ㅋㅋㅋ’는 ‘너도 고생 많다, 어서 와.’라는 짧은 응원이고, ‘당근’은 ‘시간 맞춰 재웠지. 이미 꿈나라야.’라는 다정한 상황 보고다. 무뚝뚝한 표현 뒤에 숨어 있는 남편만의 보드랍고 다정한 마음결은 오직 내게만 보이는 세계다.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수요일. 줄줄이 강의 4개를 치러내야 하는 날. 하루종일 이어지는 강의로 목이 잠기고, 끼니는 사과나 단백질 바로 대충 때운다. 마지막 강의가 끝날 쯤이면 전우주적인 피곤이 나를 덮쳐온다.
현관문을 열자 남편이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강아지처럼 나를 반긴다. 양 손 가득 든 짐을 보고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중문을 열어준다. “고생했네” 남편의 인사에 푸념이 꿀꺽 삼켜진다. 그럴 마음이 없어졌으니까. 남편의 해사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졌다.
문을 살짝 열고 침실로 들어서니 새근대는 아이의 숨소리가 나를 반긴다. 배는 반쯤 내놓고 얇은 이불을 가슴 켠에 돌돌 말고 대(大)자로 뻗은 폼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 퍽 고단할 만큼 신나게 놀았나 보네.
아침 8시에 헤어졌다가 밤이 되어서야 마주한 두 얼굴. 남편과 아이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완벽하게 닫힌다. 그제야 식탁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다. 별일 없는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들이 나를 다독였음을 깨닫는다.
오후에 친정으로 하교한 아이를 부모님은 분명 따뜻하게 맞아주셨을 테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달리고, 엄마는 정성스레 저녁상을 차리셨겠지. 남편까지 퇴근해서는 네 식구가 둘러앉아 웃음소리로 식탁을 채운 장면이 선연히 그려진다.
일주일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호의’가 느낌표로 변한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내 일상을 함께 채워주는 믿음도 호의일 수 있구나. 그저 ‘고마운 배려’라 퉁 쳤던 존재들의 호의가 몸집을 불리며 나를 감싼다.
기나긴 하루의 끝, 파도처럼 밀려드는 평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내일은 내가 그들의 저녁을 포근하게 채워주고 싶다는 다짐도 꼬리를 문다. 다정하고 또 평화로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