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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불나방 19화

불나방 19화: 인사(完)

by 밤비


그 날 새벽 3시, 나는 지후 형을 만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쭉 그랬다.


전망대도, 광장도 정답은 아니었다. 이틀 연속 허탕을 치고 나서야 건너 건너 지후 형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신호를 위반한 쪽은 40피트 컨테이너 화물차량이었다. 빠르게 속도를 내던 바이크 행렬은 피할 겨를 없이 무력하게 붉은 컨테이너 박스 측면에 차례차례 들이박혔다.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화물차량 운전자뿐이었다. 부서진 헬멧과 기름 냄새만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의 전부였다. 불타고 찢어지고 조각난 존재들. 제대로 된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피의 행렬 속에서 지후 형도 먼지처럼 아스라이 사라졌다. 그 현장에 대해 말로도, 글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참혹한 모습은 꿈에도 모르고, 무식하게 불나방 같다며 그저 감탄하기 바빴던 나를,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장례식조차 열리지 않는 죽음도 존재한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마치 불경한 저주라도 되는 듯, 누구도 지후 형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지후 형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후 형이었는데. 다들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싶어 종종거릴 때는 언제고, 이렇게 단번에 안면몰수 할 수 있는 건가. 지후 형은 대체 우리, 아니 그들에게 무엇이었나. 한 사람의 목숨 값이 벌레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대열에 내가 함께 있었어도 결과는 다를 바 없었겠단 데까지 생각까지 미치자,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울분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도 사고 현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 곳에 한번 쯤 가봐야 할 것 같았지만,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게 뻔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귀신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낸 지 한 달, 오랜만에 집에 들른 아빠의 인기척에 문 밖으로 나왔다. 같이 밥을 나눠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아빠가 건넨 용돈 만원을 챙긴 채였다.


그 길로 곧장 동네 작은 꽃집에 들렀다.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꽃들 사이로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꽃집 이모님은 찾는 꽃이 있느냐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국화꽃 한 송이를 살 수 있겠느냐 물었다. 이모님은 마침 노란색과 분홍색 국화가 예쁘다고 자랑하듯 내보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흰색이 필요해요.’ 이모님은 조용히 구석에서 흰 국화 한 송이를 꺼내왔다. 아직 제대로 꽃봉오리가 펴지지 않은 것이었다.


수다스럽던 이모님은 돌연 말을 멈췄다. 그저 말없이 투명한 비닐로 국화를 포장하고는 조심스럽게 매듭을 묶어 내게 건넸다. 이모님은 내게 돈은 받지 않았다. 마음만 받을 테니 그냥 가지고 가라고 했다. 죽은 이를 위한 꽃이라 값을 받지 않는 건지, 좋은 마음에서 하는 선의인지 잘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하자 이모가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정말 괜찮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품에 소중히 감싸 안고 태영 광장으로 향했다. 젖은 바닥 위로 희미하게 남은 타이어 자국이 반쯤 지워진 채 번들거렸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형의 마지막 흔적일 것만 같아 자국을 밟지 않으려 빙 둘러 걸었다. 조용한 광장에 자박거리는 내 발걸음만이 황량하게 울렸다.


형이 자주 앉아 있던 벤치 위에 조심스레 꽃을 내려놓았다. ‘또 너냐, 임마.’ 형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손끝이 떨렸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털어내려 짐승처럼 끅끅 울었다.


해가 지도록 한참을,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허기질 때까지 눈물을 쏟아냈는데도 울음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하얀 꽃잎에도 다시 또 와락, 터지고야 마는 눈물이었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를 두고도 형이 여전히 이 곳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철없는 상상을 했다. 그 자리에 오래토록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눈물이 말라 하얀 가루가 될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내일 또 올게요, 형.”


평소와 다름없는 광장의 밤이 찾아왔다. 어둑해진 밤하늘,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치킨 냄새와 술 냄새, 소란한 웅성거림 ... 아무것도 변한 것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마주하기 힘든 그 광경을 뒤로하고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빨갛게 언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자 그 날 형이 줬던 오만 원짜리 한 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속절없이 다시 또 울음이 터졌다. 내일 또 오겠다던 인사가 무색하게, 다시는 광장에 올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날,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툭, 꺼졌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내달릴 줄만 알던 열기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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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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