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은 일상이 매일 쌓여갔다. 낮에는 격일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이 오면 한적한 도로를 질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내 자리가 있었다. 하루하루가 촘촘히 채워졌다. 하루가 끝난 시각, 당연하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퍽 행복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곳의 가장 앞에 지후 형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달뜨게 했다. 깃대 형을 통해 칼 형과 곰 형의 소식을 전해 듣는 것도 잠시, 하루아침에 연락이 끊겼다. 깃대 형은 나를 마주쳐도 알은 채 하지 않았다. 지후 형이 이끄는 바이크 대열 끝에서 달리는 나를 발견한 게 분명했다. 낮잠 같은 관계가 저물었지만 크게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꼬리가 끊어지지 않게 알맞은 속도를 내고, 급박하게 변하는 도로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내가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굴었다. 꼴사납다거나 건방지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후 형의 대열이니까. 그거면 다 괜찮았다.
하지만 모든 평화가 오래 갈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며칠 사이에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그저 새벽마다 시끄럽게 굴던 성가신 놈들에서 도로에서 치워버려야 할 암 덩어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 무리 지어 바이크를 탄다는 건 곧 싹을 잘라내야 할 어떤 행위가 되어버렸다. 민원은 둘째 치고 연이어 터지는 교통사고가 몇 번 메스컴을 타기 시작하면서, 보이기 식에 지나지 않던 경찰의 단속도 심상치 않게 변했다. 바이크 불빛이 켜지는 순간마다 심장이 튀어 오르고, 대열을 뒤따르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지후 형이, 그리고 우리 대열이 달리는 한, 나도 그 안에 있어야만 했으니까.
오늘 밤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인가 사이렌과 한 몸처럼 달렸으므로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게 문제였을까. 멀리서부터 퍼져오던 붉고 푸른 경광등 불빛이 사방에서 우리를 덮쳤다. 경찰차 여러 대가 급습하여 길목을 막아서자 순식간에 대열이 뿔뿔이 흩어졌다. 앞뒤로 찢겨 나간 불빛들이 도망치는 불나방처럼 정신없이 흩날렸다. 속도를 줄일 새로 없이 혼돈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이쪽이야!”
지후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핸들을 꺾었다. 바이크 한 대도 겨우 지날 것 같은 좁은 골목이었지만 재빠르게 몸을 밀어 넣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좁은 담벼락 사이를 스치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아무리 대열이 흩어졌어도 라이딩 원칙은 그대로였다. 전방 주시, 지후 형이 곧 답이었다.
여러 갈래로 나뉜 골목 언저리에 먼저 도착한 형이 시동부터 껐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고요한 엔진음만이 낮게 울렸지만 그마저도 들킬 새라 성급히 병아리 키를 뺐다. 순간의 침묵. 방금 전까지 세상을 집어 삼킬 듯 요동치던 엔진음도, 주변을 가득 에워쌌던 사이렌 소리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형과 나, 우리 둘만 외딴 골목에 남았다. 거친 숨소리가 헬멧을 가득 채웠다. 형은 헬멧을 벗어내고 벽에 기대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옅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형을 따라 헬멧을 벗는 동안에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가락 끝까지 저려왔다.
“형, 하 ... 방금 ... 큰일, 날 뻔, 한 거 아, 아니에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높게 튀어 올랐다. 호흡이 정돈되지 않아 말이 자꾸만 끊겼다. 형은 으레 바람 새는 웃음을 픽, 흘리고는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발발 떨면서도 잊지 않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지폈다. 형의 입술이 가까이 닿았다 떨어졌다. 일렁이는 불빛이 순간 형의 얼굴을 비추며 낯선 그림자를 드리웠다.
“늘 있는 일이야. 경찰은 겁만 주는 거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끄덕여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됐다. 형은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건 그냥 애들 장난이지’ 깃대 형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형들은 뭐가 이렇게 다 쉬울까. 나는 뭐가 이렇게 다 어려울까. 가벼운 장난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동을 걸면 언제 다시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 칠지 모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장면들이 눈앞에 연속으로 스쳐갔다. 쏟아지는 사이렌, 미끄러지는 바퀴, 스키드마크, 튀어오르는 불꽃, 튕겨나가는 몸뚱이, 암전 ...
“그래도 ... 진짜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담배 끝이 붉게 타올랐다가 꺼졌다.
“글쎄, 그럼 그냥 죽으려나.”
그건 내게 하는 대답이라기보다 아주 작은 혼잣말처럼 들렸다. 순간 뒷목이 싸늘하게 식었다. 형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동안 내가 알던 형의 얼굴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슬퍼 보인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일 지도 모른다. 내게는 그저 빛 같은 존재인 형인데. 그럼 형에게는 그 빛이 뭘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처음으로 궁금한 것이 생겼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졌지만 한 마디도 보태지 못했다. 골목의 차가운 공기만이 어스름한 새벽을 채울 뿐이었다.
멀리서 다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일단 가자, 애들 먼저 전망대에 먼저 도착했을 거다.”
나는 대답 대신 헬멧을 고쳐 썼다. 형은 서둘러 골목을 떠났다. 좁디 좁은 골목을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그 모습을 보며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앞서 달려나가는 붉은 후미등을 놓치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두 손이 떨리고 눈 앞이 자꾸만 흔들렸다. 숨이 가쁘다. 형체 없는 불안이 발목에 매달려, 함께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