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 지잉'
1월 23일. 설 연휴에 카톡 진동이 울렸다.
나의 관포지교, 해곰이가 득녀했다는 소식이었다.
'해곰' 삼촌은 지난해 초여름 양양으로 같이 가족동반 여행을 갔을 때 딸아이가 지어준 별칭으로,
흔하지 않은 친구의 이름을 딸아이가 소리 나는 대로 말한 것이 '해곰'이다.
바다 해(海) 자에 곰 곰자로 작명하면, 외모가 곰 같아져 버린 친구를 부르기에 뜻마저 잘 어울린다.
"해곰이 삼촌은 뚱뚱해. 수염도 많이 났어."
딸아이의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팩트폭격에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했지만,
해곰이 삼촌은 그날 큰 내상을 입었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유명 시트콤 'Friends'의 Joey역을 맡은 배우,
Matt Leblanc을 닮았단 얘기를 종종 듣곤 하던 그였지만
세월 앞에서는 털북숭이 뚱뚱보 삼촌에 불과했던 것이다.
[Matt Leblanc, 시트콤 ' Friends' 中]
10대 초반에 처음 만나 반 오십 년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
결혼을 하겠다고 공표한 자리에서 신중한 선택인지 누차 물어봐 주었지만,
말릴 수 없음을 알았을 때는 흔쾌히 내 결혼식의 사회를 맡아준 친구.
그가 재작년 봄에 결혼을 했을 때, 그로나마 대리만족하며 존속하던 내 젊은 자유의 시간들도 막을 내림을 느꼈더랬다.
평생 결혼은 안(또는 못)하고 살 것 같던 그가 멋진 제수씨를 만나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도 사실 놀라웠다.
별칭을 얻었던 그날, 결혼 후 사계절을 보냈으니 슬슬 주니어 맞이를 준비할 거란 얘기를 했었던 해곰삼촌네.
하지만 그때 이미 해곰 주니어는 엄마의 뱃속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는 후문.
그렇게 이제는 우리 모두 딸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실전을 맞이하며 설렘 가득한 그의 문자.
만 4년을 먼저 육아 전장에서 임한 소대장으로서, 갓 전입 온 신병의 모습이 참으로 풋풋해 보였다.
'훗, 실전을 잘 겪어보시게나.'
딸아이가 태어난 직후 신생아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부족이었다.
물론 모유수유하던 아내가 제일 힘들었겠지만 새벽의 젖병 수유나 트림시키기는
나 또한 교대로 맡아야 할 몫이었으므로.
실제로 새벽에 졸다가 젖병을 딸의 입이 아닌 코에 넣은 경험도 있다.
제발 어디 가서 나 혼자 2주 정도 잠만 잘 수 있는 자유를 간절히 생각했던 날들도 있었다.
통잠자기 시작한 이후로는 서서히 밤의 수면시간은 늘어왔으나,
여전히 아빠에게 잠은 부족하다. 딸의 등장 이후 늦잠은 실종됐다.
주말에도 늦잠이란 있을 수가 없다.
특히나 집 밖에서의 스트레스로 기력이 소진하고 귀가한 날에,
딸아이와 놀아줘야 할 때는 졸음을 참기가 더욱 힘들다.
딸아이의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빠는,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람이 빠져가는 행사장의 풍선인형처럼 점점 더 바닥에 밀착되어만 간다.
그럴 거면 들어가서 똑바로 자라고 얘기라도 해주는 아내와 달리 요새는 딸내미가 더 가차 없다.
본인과의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빠!'라는 단호한 꾸짖음.
그때마다 육아를 1년 먼저 시작한 회사 동료가 예전에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피곤한 몸을 추스르곤 한다.
'이제 잠은 다음 생에 많이 자면 됩니다.'
[잠든 아빠에게 벌칙 스티커를 - 2020년]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