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11

둥이 머리 쿵, 엄빠 맘 쿵쿵쿵

by 그냥 하자
정말 없는 게 없는 벼룩시장. 사람도 많다!


감기는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컨디션은 정상 상태의 60% 정도를 겨우 회복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도 허투루 넘길 순 없다. 오늘은 벼룩시장Kettenbrückengasse Flea Market이 목표였다. 나쉬마르크트Naschmarkt 인근에서 열리는데 집에서 도보로 10분 컷이다. 우선 둥이 첫 수유를 하고는 아침을 먹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헝가리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평이 좋아서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맛은 있었는데 가격이 문제였고, 친절하다 했는데 팁 주고 나서야 활짝 웃어주는 사장님도 좀 문제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아침을 해결하고 둥이 이유식까지 잘 해결하고 나서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밖이 좀 쌀쌀했는데 하필 어제 산 방풍커버는 또 안 씌우고 나왔다. 왜 샀니.


둥이를 안고서 도착한 벼룩시장은 생각보다 꽤 컸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하고 일찍 접는다길래 12시쯤 도착한 우리는 이미 정리하는 와중이겠거니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한창이었고 중간중간 한 팀 씩 철수하는 팀이 보였지만 워낙 넓어서 빈자리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대부분 업자스러운 사람들이 물건들을 깔아놓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진짜 가족들끼리 쓰던 물건 가지고 나온 팀들도 보였다. 애들의 뚱하고 관심 없는 표정을 보아하니, 엄마 아빠 중에 좀 극성인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둥이가 운다. 생각보다 많이 울었다. 평소 둥이 답지 않게 뭔가 불편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뭐였을까. 집에 와서 아내가 말했다. "레깅스도 좀 작았고, 원피스 자기가 입혀준 거 보니까 앞뒤 거꾸로 더라. 그것도 좀 불편했나 봐." 미안하다 둥이야. 아빠가 정신이 없었나 봐. 사진에 찍힌 둥이의 표정이 활짝 웃고 있지 않다. 엄마 품에서 이렇게 뚱한 표정이 둥이라니. 생경하다. 어쨌든 나온 길, 당장 들어갈 수가 없기에 벼룩시장을 둘러보고 주린 배를 채우러 떠난다.


나쉬마르크트에 많은 식당들이 있는데, 딱 점심시간에 간지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도저히 여기는 둥이를 데리고 편히 먹을 곳이 없겠다 싶어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중식당을 찾아갔다. Tofu und Chili라는 곳이었는데 사람은 이미 가득이고 앞에 한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구글지도 평점도 좋았고 중식이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따라 기다려보기로 했다. 잠시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내부도 좁았다. 유모차는 카운터 쪽에 갖다 놓고 둥이를 안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맛은 꽤 있어서 만족스럽게 먹었지만, 아내가 둥이를 내내 안고 먹느라 옷에 음식을 흘리기도 하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식당에서는 크게 투정 부리지 않았지만, 길거리로 나서자마자 둥이가 또 울기 시작한다. 때마침 분유 시간도 지나고 있는 상황, 날은 춥고 갈 곳은 마땅치 않다. 결국 집으로 가기로 하고 가는 도중에 지하철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분유를 먹였다. 오늘 하루 참 고생이 많구나 둥이야. 그런데,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 집으로 들어와서는 휴식을 취한다. 오늘은 저녁에 TOSCA 오페라 공연을 내가 보러 가는 날이다. 아내는 내일모레 월요일 저녁에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19시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18시쯤 옷을 챙겨 입었다. 아직 감기가 낫지 않아 어떻게 입고 가는 게 나을까 아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거실 침대 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침대에서 놀던 둥이가 바닥에 떨어져 누워서 울고 있었다. 바로 안아 들고 진정을 시켰다. 다행히 울음은 길지 않았는데, 나와 아내도 정말 깜짝 놀랐다. 분명 침대 가장자리에 바로 떨어지지 않게 이불도 둘러놨었는데 마침 빈 공간을 찾아서 굴러간 것이다.


나중에 베이비캠을 돌려보고 안 사실인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위에서 아래로 쿵 떨어진 것은 아니고,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머리가 바닥으로 내려가고 몸통은 반동으로 옆으로 튕겨졌는데 침대 옆에 붙여 놓은 둥이 침대 옆면의 메쉬부분에 부딪치고 내려오면서 충격이 감소한 것이다. 물론 깜짝 놀라고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한 순간의 부주의가 널 아프게 했구나. 정말 정말 미안하다 아가야. 둥이가 아픈 상황이 닥치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가슴에 절로 새겨졌다. 그러면서 Day4에 길거리에서 서로 신호가 안 맞아서 둥이를 안고 있다가 살짝 놓칠 뻔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집에서야 그래도 큰 사고로 이어질 확률은 낮지만 바깥에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쩔 뻔했는가. 다시 한번 둥이의 안전 관련해서는 두 번 세 번 철저하게 체크하고 주의하자고 아내와 다짐했다.


그래도 조금 진정되는 것을 보고 나는 오페라를 보러 다녀왔다. 오스트리아 빈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푸치니의 토스카. 이름만 들어도 그럴듯해 보이는 공연이지만, 살포시 유치한 내용에다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는 이태리어, 게다가 한국어 자막은 없어 영어 자막으로 확인하는 표현들은 시적인 표현과 닭살스런 표현들이 가득해서 제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태리 원어로 진행되는 오페라들은 내 취향은 아닌것 같다. 3막짜리 공연인데 지루한 감도 들었고 둥이 걱정 아내 걱정도 계속 들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래도 이런 공연 언제 또 보겠냐면서 끝까지 보긴 했지만. 참고로 나는 과거 런던에서 혼자 '오페라의 유령'을 봤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내 인생 최고의 공연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터라 어떤 걸 봐도 비교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비교 선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탈락이었다.


집에 와서도 아내와 계속 둥이 걱정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은 자연사박물관을 갈까하고 오늘 오전에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어디를 가든 정말 하루 종일 안아주고 눈 마주쳐 줘야겠다. 며칠 동안 감기에 걸려 제대로 이야기도 많이 못 건네줬는데, 얼른 깔끔하게 나아서 하루에도 백번씩 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 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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