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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 Aug 06. 2023

아비치

Avicii

 우리는 갑자기 같이 살게 되었다. 만난 지 2-3달째쯤 내가 H에게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뉴욕의 한 미술 대학원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인상적인 작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완치했다고 생각했던 식이장애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전처럼 매일 거식과 폭식 구토를 반복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난 혼자 지내는 게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H에게 심리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개의치 아니했다. 우리는 내 전 룸메이트가 쓰던 방을 H의 작업실로 만들기로 했다.


 H는 아침마다 흥얼거리면서 일어나 침대 위 나를 폴짝 뛰어넘어 밖으로 나가 베이컨이나 전날 먹다 남은 고기 같은 걸 지글지글 굽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상이 차려지고 접시에 음식이 담길 즈음 부엌에서는 안무까지 만발한 1인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누워서 고기 냄새와 함께 들어오는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무대를 보고서야 설득이 되어 무거운 머리를 이고 식탁에 가 앉았다. 청중이 생긴 H는 친절하게도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불러주고 한가득한 고기접시를 내 앞으로 밀었다. 나는 너와는 좀 달라서 새벽부터 이런 육식동물용 식사를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권했다.


 그렇게 거하게 아침을 먹은 뒤 그는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수염까지 예쁘게 단장하고는 옆방인 작업실로 출근을 했다. 나도 그를 따라 출근했다. 방학이었다. 학교 동료들은 밀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느라 바빴지만 나의 하루 일과는 소파에 앉아서 3-40개의 비슷비슷한 드럼 소리 중 하나를 고르는 H의 뒤통수를 지켜보는 거였다. 그리고 그 드럼 라인 하나가 파란 잎이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자기 뒷모습만 보고 있는 게 지루할까 봐 어디서 스크린을 하나 구해서 작업실 벽에 달아줬다. 화면 안에서는 온갖 색깔의 파형들이 춤추다 사라지다 했다. 그가 다루는 소리라는 건 실체가 없어서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재료였다. H가 어떻게 저 많은 소리의 차이와 반복을 다 기억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들을 쌓다가 무너뜨리고, 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었다. 언어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추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가, 나는 부러워졌다.


 학교와 연계되어 있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서 식이장애에도 효과가 있다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 약은 진짜 효과가 있어서 통제가 되지 않고 날뛰던 식욕과 기분이 좀 잠잠해졌다. 힘이 난 나는 즉시 다시 맹렬하고 비밀스럽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식이장애 환자는 당연히 다이어트를 해서는 안 된다.) 몸 안에 남겨둘 것은 하나하나 칼로리를 다 세고 떠먹는 요구르트 한 개를 더 먹을지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전처럼 하루 종일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건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줘, 정신을 차리고 작업 생각을 할 수 있었다.


 H와 같이 나들이를 나가기도 했다. 길이 좁아서 차가 잘 안 다니는 이 동네는 천천히 걷기에 좋았다. 걸으면서 우리는 H가 방금 만든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곰곰이 감상을 하고 베이스가 너무 찢어진다, 후렴에서는 목소리가 뒤로 더 가야 하지 않을까? 하며 토론을 했다. 그러다 큰길로 조금만 나가면 있는 중고품 가게에서 와, 이 컵 50센트 밖에 안 해, 감탄하면서 두 개를 사서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공연도 같이 가서 봤던 디제이 아비치 Avicii 가 죽은 걸 알게 된 날에는 홈디포에 들러 작은 인삼 벤자민 분재 나무를 하나 샀다. 분재는 잘 돌보면 영원히도 살 수 있다고 점원이 말해줬다. 화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아비치의 노래를 틀고 방방 뛰면서 춤을 췄다. 내 장례식에서도 누군가 춤을 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H와 나처럼 그가 만든 노래를 듣고 있을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나무를 아비치라고 부르기로 했다. 음악가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다 어느 날, H가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애가 약간 이상하다 싶으면 대부분 취해가는 길목에 있어서 그런 거였다. 하루에 곡 아이디어를 서너 개씩 내야 하는데 맨 정신으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근데 또 믹싱 할 때나 보컬을 손 볼 때는 지루해서 마실 수밖에 없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긴장이 되어서, 뭐 이런 식이어서 결국 뭘 하든 술은 필요한 것 같았다. 내가 싫어하는 걸 점점 티 내자 그는 마신 걸 숨기거나 몰래 마시기 시작했다.


 한 집에서 우리는 절묘하게 동선이 겹치지 않는 발레리나들처럼 각자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몰래 음식을 입 안에 밀어 넣고 토한 뒤 증거를 인멸하려고 청소하고 환기를 시키는 동안 H는 위스키를 물통에 담아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척하고는 마시고 들어왔다. 내가 아는 걸 그가 아는지는 불분명했고 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처럼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냥 눈감아주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이 거주방식에 나름대로 적응을 했고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계속 이런 식일 거라고 누가 알려줘도 크게 절망하거나 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가 크레딧: Jorge Garcia, @photosbyjorg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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