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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 Oct 17. 2023

우리가 싸우던 방식

 이제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나름대로 평범하게 느껴졌고 이 정도 타협은 타협도 아니며 나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든 어느 밤, H가 나를 깨웠다. 그의 손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핸드폰이 있었고, 그건 분명 본인이 방금 만든 노래일 것이었다. 야, 이거 진짜 중요한 거야, 그가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술냄새가 나는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참고로, 그는 미국인이다. 좀 더 정확히는 미국 남부 사람이다. 하지만 대학을 중퇴하고 바로 뉴욕으로 올라와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평소에 말할 때에는 남부 사투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단, 그가 매우, 매우 취했을 때 수다스러워진 그의 입에서 실수처럼 미끄러져 나오는 사투리의 흔적을 들을 수 있는데, 이걸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야” 또한 “Dude”를 어떻게 번역할지 몰라서 차선으로 선택한 단어로, 주로 젊은 남자들이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를 부를 때 쓰는 말이고 연인 사이에 쓰는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취했을 때 상대가 누구든 이렇게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 마저 이렇게 부르곤 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한 번 더 들어야 한다며 다시 재생을 눌렀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그렇게 여섯 번째 같은 노래에 매 번 과장되는 그의 립싱크 공연까지 겨우 버틴 뒤 나는 고백했다. 졸려서 못 듣겠어. 


 뭐라고?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굴착기에 달린 삽 같은 손으로 내 두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좀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의 힘으로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순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진짜 굴착기처럼 내 쇄골을 반으로 뭉개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우리의 몸 크기를 비교해서 나온 결론이다. 나는 키가 크다. 173cm는 여자로서 큰 키이고 성별을 따지지 않고 그냥 “사람”으로서도 작은 키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나는, 내가 키가 좀 더 작았더라면 식이장애를 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20대까지 어떻게 해서든 내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려고 무던히 노력해 왔다. H 역시 173cm로, 나와 세로 길이는 비슷하지만 가로나비와 몸통 두께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빈약하고 납작한 상체를 가졌지만 그는 미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미식축구선수,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씨름선수 같은 두꺼운 몸의 소유자이다. 하마나 곰을 연상시키는 몸이었다. 물론, 이건 “뚱뚱하다”라는 말의 폭력성을 피하고 좀 더 정확한 표현을 고민한 결과 나온 언어들이고, 그는 과체중이기는 했다. 근육질이지만 지방 또한 그만큼 많은, 그런 몸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의 딴딴하고 거대한 배에 머리를 베고 티비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에서 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그의 뒤로 가서 내 품에 다 안기지도 않는 그의 등을 안은 채로 허리에서 삐져나온 탄성이 가득한 옆구리살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거대한 몸은 이렇게 나의 애정의 대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 똑같은 몸이 폭력성, 특히나 나를 향한 폭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건 내가 인간의 몸에 대해 가지는  자가당착적인 사상 또한 보여주는데, 내가 커지는 건 비도덕적이고 추악한 것으로 여기고 견디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사랑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무쇠 팬같이 두터운 손의 힘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손잡이나 주방기기를 부서뜨릴 때에도, 그건 매우 “귀여운” 일련의 사건이었지 나에게 위협이 느껴지는 행동은 아니었다.)


 뭐 하는 짓이야? 내가 항의하자 그는 지금 졸린 게 말이 돼? 아침이면 이 모든 게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댔다. H의 팔이 장난감이 나오지 않아 짜증이 난 애가 뽑기 기계를 잡고 흔들어대듯이 내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가 내 턱과 머리카락을 잡고 손가락을 뻗어 눈꺼풀을 열려고 했다. 알았어, 알았어, 들을게. 들으면 되잖아, 내가 말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노래를 틀었다. 


 자, 이 시점에서는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연인 사이의 폭력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 온 뻔한 이야기이지만, 그걸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에 얽힌 나의 수치심과 당혹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가 나를 잡고 흔드는 부분은 다시 읽을 때마다 혼란스러운 기분이 드는데, 그 기분을 없애기 위해서 수없이 많이 고쳐야 했다. 아주 세세하게 내 심적인 변화를 쓴 버전도 있고, 그를 괴물처럼 만든 버전도 있으며, 별일 아닌 걸 내가 머릿속에서 과장해서 해석했다고 암시하는 버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사건을 어떻게 쓰는 것이 당시에 그를 향한 내 사랑과 분노와 죄책감, 그리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은 점점 더 마모되어 믿을 수 없는 게 되어 버렸고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억지로 불러내지 않으면 그의 얼굴은 더 이상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단, 술문제가 있는 사람과 삶을 공유하는 건 쉽지 않았고, 그가 어떤 사회의 어떤 집단의 기준에서는 선을 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고, 그런 것들이 객관적으로(그런 개념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의문이 들지만) 어떻게 해석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로 인해 나는 깊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만이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인 것 같다. 그 이외에 내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인상과 감각뿐이다. 그날 밤, 그가 흐르는 노래 위로 내뱉는 말들은 어렸을 때 뉴스에서 본 것 같은 산불을 떠올리게 했다.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해서 보고 있는 게 두렵게 느껴졌다. 


 이 이상한 고문은 한 시간도 넘게 이어졌기 때문에 나는 절망에 빠져 탈진이 되었다. H는 가엾다는 듯 고개를 기울여 나를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내 얼굴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았다. 그러다 뭔가 퍼뜩 생각난 듯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두꺼운 상체는 취한 다리가 가누기에는 너무 무거워져서 쿵, 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하얀 이불속으로 침몰했다. 그는 침대 끝에서 대롱거리는 다리를 벌레처럼 움직이다 가까스로 일어서는 데 성공을 하고는 산 같은 몸을 하늘과 땅으로 솟구치게 해, 마치 무당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라가 싫단 건 내 몸에서 떨어져, 꺼져 꺼져 꺼져 예아!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우리 침실을 탈출해 그의 작업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쫓아오던 H는 닫힌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지만 내가 아무 반응을 해주지 않자 흥미를 잃었는지 금세 조용해졌다. 나는 소파에 웅크려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는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과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사죄를 구하는 모습, 그 얼굴 표정이나 한 마디 한 마디 고심하며 내뱉는 단어들이 공기에서 엮이는 모양은 너무나도 진정성이 있어서, 나는 내가 인생에서 용서를 구해야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때마다 얼마나 모양 사나워 보일까 걱정하던 것을 기억하고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가 전날 밤과 얼마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일지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그의 얼굴에 남아 있을지 모를 그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가 가진 설득력만큼이나 한 치의 죄책감도 길게,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거기에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매번, 금세 다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이가 된다. 




*사진가 크레딧: Jorge Garcia, @photosbyjorg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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