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아이들에게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특히 거리를 오갈 때면 아이들은 더 예민해졌다.부아아앙,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지나갈 땐 아이들은 나보다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큰 아이는 두 팔을 벌리며 인도와 차도 경계에서 나를 막아 세웠고, 작은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나를 인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엄마를 보호하고자 하는행동에 고마워 눈물이 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엄마 어디 있어?"
학교나 학원에 다녀오면 현관문을 열며 으레 껏 '다녀왔습니다!' 하던 아이들의 인사말이바뀌었다. 주로 거실에 머무는 내가 잠시만 안 보여도 두 아이는 번갈아가며 나의 위치를 확인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큰 일이라도 볼라치면 왔다 갔다 여러 번 확인해 대는 통에 영편치가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확인 작업(?)을 한다. 그 확인 작업을 더 이상 안 하는 날, 그날이 올 때즈음엔 아이들의 상처도 잘 아물수 있을까? 부디 그러길 바란다.
병원 입원 중에 다녔던 통원 치료 스케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통원 치료가 있는 날엔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회복기에 있는 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적게 움직이기였다. 아이들을 두고 재입원하는 불상사를 맞지 않기 위해계속 몸을 사렸다.
사고 삼 개월 전까지회사의 스케줄 근무를 소화하며 육아와 살림을 하던 나였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신체를 움직이는 강도가 훨씬줄어든 상태였다. 통증과 어지럼증으로 내 것 같지 않던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별 탈없이 예전 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흘러가고 여름을 맞았다. 컨디션에 따라 몸이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너무 자신 만만했던 걸까? 무더위가 기승이던 8월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기존 세입자의 요청으로 이삿날이 9월에서 8월로 옮겨졌다. 별수 없이 여름의 한가운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이사를 하게 됐다. 아무리 포장 이사라 해도 손이 안 갈 수 없었다.짐을 다 들어낸 공간에는 묵은 때와 먼지가 그득했고 주방 찬장은 그릇들이 마구 뒤엉켜 넣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숨 쉬고 살아갈 곳인데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일주일을 꼬박 쓸고 닦고, 쉬어가며 한다고는 했지만 몸은 버티지 못했나 보다.정말 이사 후 딱 일주일 되던 날 아침,일어나 햇빛이 잘 드는 거실로나갔는데 유난히 눈이 부셨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뜨지못할정도로아팠다. 한방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당시에도 한번 느꼈던 고통이었다.
아뿔싸, 또 왔구나... 포도막염 재발이었다.
"엄마, 눈이 너무 빨개."
"엄마, 눈에서 피나는 거 아냐? 이상해!"
사고 후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사고 후유증으로 포도막염이 일시적으로 온 것으로 봤다. 그래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안약과 염증약을 하루 4번씩 넣으며 경과를 치켜봤었다. 그렇게 안약 치료를 두 달간 했었다.
그 포도막염이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재발한 것이었다. 이사로 무리해서였겠지, 나름대로 추측하며 대학병원 안과를 예정된 진료일보다 앞당겨갔다.
복시와 사시 전문의였던 담당의사는 포도막염 재발을 심상치 않게 봤고, 정밀하게 검사를 하길 권했다.
포도막염 원인을 찾아 채혈한 흔적
채혈을 하고 한 달 후 안과로 결과를 들으러 갔다. HLA-B27 양성. 이 유전자는 주로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류머티즘이나 강직성척추염 등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했다. 단순히 눈이 빨개지고 염증이 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첩첩산중이었다.포도막염이 다른 질환 때문에 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안과 담당의사는 포도막염과 관련해 망막 전문의에게 협진 의뢰를 했고, 바로 류머티즘 전문의와 상담 스케줄도 잡아주었다.
이후로 두세 달에 걸쳐 두 번의 X-ray 촬영과 한 번의 채혈이 더 있었고, 각 의사의 스케줄에 맞춰 진료를 보았다. 결과는 원인 불명. 더 정밀하게 CT나 MRI를 찍을 수도 있으나 눈에 염증 말고는 다른 큰 증상이 없던 터라 의사가 권하지 않았다. 다만 또 재발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스트레스와 피로를 피하라고 당부했다.
그 이후 한번 더 포도막염이 재발했고 안약 두 개를 하루에 6번까지 넣었다. 아직은 안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단계라 다행이다. 마지막 재발 이후로 6개월 단위로 안과 검사를 가고 있다. 얼마 전 진료를 보고 왔고, 다음 진료는 내년 2월이다. 그 안에 재발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온 것인지,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빨간 눈의 여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후유증으로 언제나 몸사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집안일도 육아도 운동도 해야하는데, 모든 일에 적당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꾸만 몸을 사리니 체력은 사고 전보다 떨어진 듯 하고 몸 컨디션에 따라 감정도 좌지우지 되는 기분이다. 언제쯤 없었던 일처럼 말끔해질까? 기다릴 뿐이다. 재발이 되지 않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