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암호인듯쓰여있는 알파벳과 숫자는 항공기의 기종을 말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비행기를 제작하는 회사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미국의 보잉(Boeing)사와 유럽 연합의 에어버스(Airbus)가 되겠습니다. 국내 항공사에 들어오는 여객기는 거의 다 이 두 회사에서 들여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잉사에서 제작한 항공기는 알파벳 B와 숫자로 기종을 구분하고, 에어버스에서 제작한 항공기는 알파벳 A와 기종을 뜻하는 숫자로 표기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B737-400은 보잉사에서 제작한 737 기종이라는 뜻입니다. 뒤에 붙어있는 400이란 숫자는 같은기종의 옵션 표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풀옵션이냐 깡통이냐 뭐 그런 차이라 할까요? 뒤에 붙은 숫자에 따라 같은 기종의 비행기라도 내부 구조에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예를 들면 화장실의 위치나 파티션, 갤리(Gally, 승무원들이 일하는 공간)의 구조등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제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 아주 얄팍한 지식밖에 없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
두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비행기들 중에 장황한 설명까지 붙여가며 B737을 설명하는 것은 애정이 깊어서 일까요? 애정보다는 애증의 관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첫 비행 그리고 신입 시절의 비행을 거의 이 비행기와 함께한 까닭입니다.
자매품처럼 B737-300, A320-100, A321-200 등이 있습니다. 이 기종들이 공통점은 모두 소형 기종이라는 것입니다. 주로 국내선이나 가까운 일본, 중국등에 투입되는 것들이지요. 좌석수가 보통 200석 내외로 300석을 넘지 않고, 국내선 기준 4~5명의 승무원이 탑승합니다.
저는 국내선 전담 승무원으로 입사해 거의 4년 동안 국내선 비행만 했습니다. 제주, 부산, 여수, 청주, 광주, 대구 등 전국 공항을 누비고 다녔지요. 하루에 제주공항을 세 번 찍고, 제주에서 1박 후에 다른 공항을 찍고, 돌고, 서울로 돌아오는 스케줄도 있었습니다. 첫 비행 역시 제주, 제주였겠지요. 정확히 기억을 더듬어 보나 마나 제주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많이 갔다는 소리입니다.
짧은 그라운드 타임에 서비스할 음료가 실리고 클리닝 직원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청소를 하며 썰물 빠지듯 쫙 빠지면 바로 탑승이 시작됩니다. 200명의 승객이 타고, 음료 서비스를 하고, 승객이 내리고 다시 그라운드 타임. 정신없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여기가 제주인지 광주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 광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술렁술렁'
"여기 제주 아니야?"
"다시 광주로 돌아왔나? 우리 집으로 가래. 하하하!"
이미 말은 내뱉었고 방송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상 기운을 눈치챈 옆 승무원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메모를 건네줍니다. (제주 X 광주 공항!!) 아뿔싸, 얼굴이 점점 붉어집니다. 최악의 경우는 방송을 귀 기울여 듣는 사무장이 '띵똥~'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오는 경우입니다. 정정방송을 해야겠습니다.
"손님 여러분께 정정 안내 말씀드립니다. 저희 비행기는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짧은 국내선 비행 특성상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승무원들도 이런 아찔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방송을 하는 듀티(업무)를 맡게 되는 날에는 포스트잇이나 메모지가 필수였습니다. 종이 책으로 엮인 방송문에 목적지 공항을 메모해 붙여놓고,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요즘은 방송문과 매뉴얼이 태블릿에 저장되어 있고, 스마트한 기기가 알아서 목적지 공항을 알려주기에 그런 실수는 적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스마트한 세상, 그래도 몇 년은 경험해 보고 퇴사했네요.
그럼 저의 순수한 첫 비행은 B737과 함께 순항 중이었을 까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산골에서 나고 자란 제가 비행기를 타보면 얼마나 타봤겠습니까? 입사 전까지 딱 한번, 용돈을 모아 어머나와 단둘이 사이판 여행을 다녀온 게 전부였습니다.
오르락내리락, 흔들흔들. 비행기가 왜 그리 덜덜거리고 엔진 소리는 귀청이 나갈 듯 시끄러운 지. 울렁울렁, 첫 비행에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은 둘째치고 비행 멀미로 일주일 꼬박 고생했습니다. 비행기 맨 뒤쪽 갤리에 쓰레기통 비울 때나 쓰는 커다란 비닐을 걸어두고 헛구역질만 해댔어요. 승객들 앞에서는 애써 미소 지으며 음료 서비스를 하고 갤리로 들어가면 비닐봉지에 머리를 처박던 막내 승무원. 네, 그게 저였습니다.
그렇게 딱 일주일이 지나니 몸이 적응되더군요. 그 뒤로는 웬만한 흔들림에도 끄떡없이 두 다리가 복도에 붙은 사람마냥 비행기에 한 몸처럼 붙어 일했습니다. 에어포켓을 만나도 복도와 몸이 분리되지 않을 것처럼 말이에요. 절대 제가 무거워서 안 뜨는 거 아닙니다. ^^
수요일 연재를 하겠노라 프롤로그를 올려놓고 하루가 지나 글을 올립니다. 집에 누전이 생겨 차단기가 내려가고, 냉장고가 꺼지고, 어제와 그제 이틀간 난리였거든요. 전기가 차단된 삶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전등만 살아있어서 빛에 의지해 핸드폰으로 올려보려 했으나 결국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기다리신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