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기 100억 프로젝트
1,300만 원으로 서울 성동구 금호동 2층 전셋집을 얻었다.
빨래하니 손등에 멍이 들었다.
제일 먼저 세탁기를 구입했다. 할부였다.
가스레인지보다 세탁기가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시간도 그만큼 절약되었다. 손등에 멍도 들지 않았다.
세탁기를 발명한 사람이 존경스러웠다.
방이 작아 좋았다.
혼수품 장만할 돈이 없었는데
방이 작으니 속으로는 남편 몰래 안도의 자존심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혼수품은 여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텔레비전과 시장에서 몇 자 되지 않은 장롱을 구입했다.
금호역과 옥수동 근처 시장에서였다.
28만 원 주고 산 장롱이 아직도 살아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으니 그것의 나이도 30살쯤 되었을 것이다.
나무는 사람보다 더 튼튼하다. 지난해 시골집 사랑채가 불에 탔을 때도 살아있었다.
한 칸은 이불을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이 넉넉한 이불장이고 다른 한 칸은 옷을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래로 서랍 두 칸이 자리 잡아 제법 쓰임새가 있는 검은색 장롱이다.
나무가 뒤틀리고 문짝이 바르게 닫히지 않는 흠이 있지만 28만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값보다 몇 배의 몫을 하는 것들이 있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다. 지구를 지탱하는 자전축처럼 세상에서 튕겨 나가지 않게 한다.
나에게 28만 원의 장롱은 행운이었다.
3년 가까이 살았던 서울 살기를 종료하고 신혼집을 꾸린 지 1년 만에
다시 대구로 왔다.
봉덕동이다. 장롱도 따라왔다.
대구로 이사 올 때는 1,800만 원의 전셋집을 얻었다.
1,300만 원으로 시작한 연탄 부엌 전셋집에서 1,800만 원으로 늘려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1,300만 원은 결혼 당시 시댁에서 방을 얻어 준 돈이다.
결혼 당시 피로연을 취소하고 폐백시 절값 그리고 신혼여행 경비 절감으로
400만 원을 저축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저금으로 100만 원을 보태 나의 자산은 1,800만 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