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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 Aug 06. 2024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포기하는 것 또한 어렵다.

영화를 도전하고, 포기하고, 다시 도전하기까지.

2022년은 몇 년 안 살아본 내게 최악의 해였다. 약 6개월 동안 애정을 담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했던 영화제가 그 해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중간에 잠시 스태프로 참여했던 다른 영화제 또한 문을 닫았다. 영화제 예산이 대폭 줄어든 현시점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진 영화제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았던 영화업계와 공연 및 페스티벌 업계는 그 와중에도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뎠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참 많이도 무너져 내렸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로부터 큰 영감을 받는 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더라도 가상의 환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끝까지 정의를 외치는 작품을 보고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때때로 평안에게 굴러가는 내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사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의 소외된 존재들을 비추는 작품을 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고 각성한다. 개인적인 성과에 집착하느라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을 땐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영화를 꿈꿨다. 나 같은 사람이 일반적이진 않더라도 한 두 명 정도는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적인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 한 두 명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들이 좋은 에너지를 받고 전달하여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그런데 정말 본격적으로 사회인이 되어 꿈을 향해 걸어갈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애석하게도 팬데믹 상황은 장기화되었고 나의 야심 찬 계획들은 쉽게 부서졌다.


영화제는 손해 보는 장사다. 즉, 돈을 벌기 위해 매년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기 위해 영화제는 계속된다. 영화제는 새로운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꿈을 꾸고 있는 제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마켓’이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제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는 후자에 가깝다. 암만 영화 산업 역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예술의 특성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에 단순히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만 맞춰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꿈을 꾸고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결국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한 번씩 의식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스틸
영화 <어느 가족>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D.P.> 포스터

예컨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방임된 아이들을 다루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영화 <어느 가족>은 좀도둑질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는 소외된 이웃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넷플릭스 시리즈 <D.P.>는 폐쇄적인 한국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폐해와 비리를 유쾌한 추리 형식을 빌려 고발하는 내용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두 영화는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한 번쯤이라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D.P.>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지만 영상화됨으로써 더 많은 대중에게 닿은 결과 수많은 담론을 이어나가게 했고 결국 (보여주기식일지라도) 국방부장관까지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이 세 작품이 단순히 보는 이들의 '재미'와 '수요'만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기꺼이 만들어졌고 관객과 시청자의 눈에 들게 노력하였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법에 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영화는 (넓게 보면 콘텐츠는) 창작자의 예술적 감각과 의도에 만들어지는 작품인 동시에 대중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대중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화제는 더더욱 필요한 존재다. 영세한 창작자들이 자본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단순히 상업적 재미를 추구하는 거대 자본에 의한 영화들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산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영화들 역시 정말 필요하다. 다만 이제 '다양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시장이 그러하지만 특히 영화는 상술했던 특징으로 인해 더더욱 다양성이 보장된 상태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적어도 나는 믿는다.)


하지만 눈앞에서 내가 발을 들였던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문을 닫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그야말로 '미디어 불황'으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가 창고에 쌓여있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하염없이 무력해졌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당연히 상경계열 학과에 진학했지만 한 번도 이 분야를 놓지 않았고 더더욱 빨리 몸 담기 위해 기다리고 또 노력했는데, 졸업이 가까워지고 본격적으로 업계에 종사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쉽게 다리가 풀려버렸다. 와중에 장기화된 이 재난 상황에서 지친 대중들은 굳이 애써 생각하는 작품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바쁘게 움직였었다. 내가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서랄까. 그런데 2022년 10월, 그 해 준비했던 나의 마지막 영화제 프로젝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누가 내 몸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주저앉았다. 눈물은 의지 없이 흘렀고 나는 여태까지 무얼 위해 달려왔나 싶은 생각만이 가득 찼다. '울면서 현타 온' 나 자신이 너무너무 싫었다.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건 사실이지만 나보다 더 어렵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 할 텐데 따지고 보면 딱히 뭐 한 거 같지도 않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게 솔직히 같잖았다. 아 결국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노력도 재능의 영역이라던데 난 멋진 영화를 만드는 재능도 없는 주제에 노력하는 재능마저 없는 거구나 싶었다. 돌아보면 일종의 번아웃이 온 것인데 번아웃이 올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참 많이도 미워하며 나 자신의 상태를 계속 부정했다. (그리고 이는 모든 현대인의 슬픈 현상 중 하나인듯하다. 모두들 번아웃이 온 자신을 인정하고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 딱 2022년 10월 중순부터 처음으로 나답지 않게 지냈다. 학생이니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서 매주 그때 배운 것들을 복습하며 문제들도 미리 풀어보던 나는 내 눈앞에서 책을 치워버렸다. 학교도 무단으로 여러 번 빠졌고.. 이전엔 평소에 공부를 해서 시험기간에 딱히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았다면 이때는 정말 시험기간에도 공부를 안 했다. 지금 와서 학부시절 성적표를 보면 이 시기만 학점이 뚝 떨어져 있을 정도로 아주 나태한 두 달을 보냈다. 숨을 곳이 없어서 자꾸만 이불속으로 숨었고, 그냥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단순히 지친 것이 아니라 별 것도 아닌 거에 지친 나 자신을 너무나 미워했으니.. 부정적인 생각은 참 꼬리에 꼬리를 잘도 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을 그만두기로. 어차피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할 테니 그냥 경영학과 나와 나쁘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지내는 삶을 택하자고. 영화 일을 하겠다고 일찍이부터 여러 곳에서 경험을 쌓은 덕에 이력서는 감사하게도(?) 화려했고, 토익도 일찍 따놨고, 그냥 말만 잘 맞춰서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맞았다. 주변에서도 "솔직히 네가 작정하고 취업 준비를 한 적도 없지 않냐"는 현실적인 조언도 해줬고 사실 정말 틀린 말도 아닌 지라 뼈아프지도 않았다. 그래. 12월까진 그냥 이렇게 살고 내년부터 새로 태어나자.. 결심했을 때쯤, 나는 아주 이상하고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내가 이렇게 어찌어찌 몸과 마음이 힘든 나날들을 보냈던 그 해에 다행히도 내가 개인적으로 응원하던 한 운동선수는 처음으로 국가대표 예비 멤버로 선발되었었다. 예비 멤버였기에 국제 대회를 뛸 가능성은 낮았었지만, 12월에 결장한 선수를 대신하여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다. 방구석에서 딱히 큰 기대 없이 경기를 챙겨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시니어 국제대회를 나간 이 친구가, 대신해서 나오느라 주종목도 아닌 경기를 뛰게 된 이 친구가 정말 짧은 시간 내에 결과를 뒤집으며 메달을 땄다. 그것도 두 번이나. 40초 남짓한 시간 안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10월에 주저앉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영화와 드라마에 영감을 받던 내가 저 40초 남짓한 경기들에 색다른 영감을 받아버린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눌러놨던 내 작은 꿈이 거짓말처럼 다시 피어올랐다. 주변의 현실적인 조언들에 타격이 없었다 생각했고 다 맞는 말이라고 인정했었지만 사실은 어쩌면 '그래도 다시 해봐,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아주 막연하고도 뜬구름 잡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포기하지 못했던 거였다.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포기하는 것 역시 참 힘들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메달을 목에 걸고 카메라에 인사를 하는 모습이 마치 유명한 광고 문구처럼 '야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 선수의 메달 소식은 팬으로서 기쁘기도 했지만 내게는 다소 절실한 동아줄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걸까. 나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핑계 삼아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애써 외면했던 영화관에 다시 가기 시작했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아주 작게는 영화 공부를 재개했고 2023년의 해가 밝아온 뒤 대학교 마지막 학기는 정말 열심히 다니며 낭떠러지로 떨어졌던 성적을 회복했다. 그리고 제 발로 다시 이 영화를 꿈꾸는 길로 들어섰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처럼. (2023년 9월에 발매된 노래이지만 괜스레 끼워 맞춰본다.)

“뒤져도 낭만 없는 밤하늘에 나의 별들을 찍는다. 뒤덮은 검은색 그 사이로 빛이 흘러내리게 꿈꾼다”
- Young K(DAY6), 꿈꾼(Dre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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