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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Sep 18. 2023

육아 중 강제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이 별 건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 이준이를 산책시키다 문득 든 생각인데, 육아를 하다 보면 미니멀리즘을 몸소 실천해야 할 때가 많다.


우선 옷차림. 최대한 간소하게 입게 된다. 화려하고 예쁜 옷보다는 활동성 있는 간단한 면 티셔츠에 편한 바지가 최고다. 무얼 입고 출근하지 아침마다 고민했던 20대 때와는 달리, 이준이가 나가자고 하면 그냥 보이는 옷을 주워 입고는 내가 무얼 입느냐가 아닌 아이에게 무얼 입히냐를 고민한다.


그리고 먹는 것. 육아휴직 시절,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이가 잠시 잠든 낮잠 시간, 언제 깰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며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무작정 먹어치웠다. 배달이라도 시키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이가 깨거나 포장 음식을 뜯을라치면 아이가 깬다는 것을 이젠 경험으로 안다. 아이가 자는 길면 20분 그 찰나 같은 시간에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나머지 시간을 아이가 깨면 오후 간식으로 무얼 먹일지 고민한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야 했던 오늘 같은 날도 그렇다. 집 앞 공원에 잠시 산책을 나가는 건데도 기저귀며, 아이 물과 음료수며, 혹시 잠깐 나간 사이에 배고프다고 할까 아이 과자도 종류별로 챙기고, 산책 나간 사이 혹시 찾을까 이준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여러 개 챙긴다. 가방에 아이 물건만 잔뜩 챙기고 내 핸드폰은 깜빡한다. 공원에 반 정도 와갈 무렵 갑자기 생각난다. 아, 핸드폰.... 그렇지만 이준이를 다시 데리고 집에 갈 수도 없다. 이준이는 이미 공원에 다 와간다고 신이 나있다. 그냥 공원에 가기로 한다. 오늘 오후 한 번 핸드폰 없이 지내보지 뭐. 미니멀리즘이 별 건가.


핸드폰으로 이준이의 노는 모습을 찍을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리고 남편이 이준이와 놀아주는 동안 뒤돌아서 잠시 맛보는 꿀 같은 핸드폰 타임은 가질 수 없었지만, 핸드폰에 찍히는 이준이의 모습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이준이의 개구진 웃음을 필터 없이 담아낼 수 있어서 사진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두니 보고 자."


어젯밤 새벽 아이가 깨서 달래주러 방에 들어갔더니, 어디 가지 말고 자기를 보고 자라며 내 멱살을 꼬옥 잡는 이준이를 보고 이번 주말, 출근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게 미안해졌다.


"엄마 어디 안 가. 이준이 보고 잘게. 잘 자, 이준아."


잠은 부족하지만 마음은 이준이로 가득 찬,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이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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