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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Sep 22. 2023

밤 12시의 육출

고된 하루의 보상

미국, 유럽지역과 화상으로 참여해야 하는 위원회가 있었다. 덕분에 아시아 지역에서는 늦은 밤으로 회의 시간이 정해졌다. 윗분들을 모시고 참여해야 하는 회의라, 빠질 수도 없었다.


 9시에 시작하 얼추 11시 전에는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럼 정리하고, 11시에 집으로 출발해야지.




11시 반. 예상보다 말들이 많아 회의가 길어졌다.


이준이는 잠들었겠지?


잘 때까지 혼자 이준이의 비위를 맞춰주고 케어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곤 오늘은 이준이가 잘 때 출근해서 잘 때 퇴근하는, 자는 이준이 얼굴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출퇴근 버스로는 길이 막혀 40분은 족히 걸리던 거리가 지금 이 시간에는 15분이다. 늦은 시간만큼 도로에 차는 내가 탄 택시뿐이다.


"저기 횡단보도에서 세워주세요."


에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네비 상 찍히는 정문 대신 후문 근처에 내려달라고 한다. 분주한 마음으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삑삑삑-


이준이가 혹시 자는데 깰까, 조심스럽게 현관 번호를 열고 들어간다.


"엄마 왔어? 엄마 소리야."


불 꺼진 거실 한 구석, 안방 쪽에서 이 시간이면 분명 잠들었다고 생각한 이준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랑 놀 거야."


이내 이준이가 안방 문을 열고 달려 나와 나를 꼬옥 안아준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응"

"얼마나?"

"마-니!"


이준이를 재우려고 10시부터 온 집안에 불이란 불은 다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남편의 탄식이 이어진다. 일이 바쁜데도 내가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만사 제치고 칼퇴하여 독박육아를 해주는 남편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엄마야. 엄마는 이두니야. 엄마가, '비타민 비타민' 해."


오전에 어지럼증 때문에 병원엘 갔다가 약국에서 참지 못하고 그만 뽀로로 장난감이 든 아기 비타민을 사버렸다. (유아 비타민에는 영양만큼 당분도 많다는 어느 육아 인플루언서의 글을 보았지만 자꾸 사주게 된다.) 이준이에게 주니, 본인이 엄마 역할을 할 테니, 나보고 '비타민을 달라고 조르는 이준이' 역할을 맡으란다. 비타민도 이준이 손에서는 놀잇감으로 재탄생한다.


내일 아침 일찍 또 출근해야 하지만 이준이가 안 자고 있었던 것이 마치 엄마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 같아 고된 하루의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그렇게 나는 밤 12시, 아닌 밤 중에 홍두깨가 아닌, 피곤하지만 행복한 닌 밤 중 육출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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