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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Oct 10. 2023

아빠는 외롭다

(Feat. 아빠 저리 가)

육아휴직 시절, 육아가 너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몸을 갈아 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육아에 상응하는 보상이라 함은 바로 아이의 웃는 얼굴과 나를 향한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지금은 눈만 마주쳐도 꺄르르 웃음보가 터지는 이준이지만 신생아 시절에는 배냇짓은 고사하고 나를 향해 웃어주는 일이 드물었다. 눈만 마주치면 울어대는 통에 남편과 나는 (뼈 있는) 농담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눈 뜬 이준이"라고 할 정도였다. 아무 이유 없이 내리 1시간을 우는 이준이를 안고 나도 함께 울었던 날들도 수없었다.


내년이면 세돌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남편이 이 보상 없이 쳇바퀴를 굴리는 상황에 놓여있다.

두 돌 이후로 이준이는 부쩍 '엄마 껌딱지'가 됐는데, 이게 엄마 껌딱지가 된 걸로 모자라 '아빠 싫어요' 병으로까지 번졌다. 아빠가 안아주면 난리가 나고 심지어 비타민 포장지를 까주는 것마저 아빠가 해주면 엄마가 해줘! 하며 오열한다.


"아빠 더리 가!"


이준이를 재우기 위해 함께 침대에 누웠던 어느 날, 이준이가 하는 말을 듣고 방금 설마 "아빠 저리 가"라고 말한 건가 갸우뚱했다. 이준이는 말이 조금 늦었는데, 두 돌이 지나도 간단한 단어 정도밖에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그랬던 터라 저렇게 말하는 것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을 줄이야.


"엄마만 조아. 아빠 시러. 아빠 오지 마!"


등원은 물론 야근이 잦아진 나를 대신해 하원까지 도맡아 하고, 이준이 저녁상을 차려주고 쉬는 시간 하나 없이 저녁 내내 놀이터에서 온몸으로 놀아준 고된 하루의 끝, 우리 남편이 마주하는 말이다.


돌 전까지는 오히려 남편이 이준이를 나보다 더 잘 달랬다.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원래 아빠보다 엄마한테 안기면 뚝 그쳐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 잠깐의 시기가 무척이나 서운했는데, 아빠 싫어요 병은 벌써 거의 1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남편은 얼마나 섭섭할까.




이준이를 재우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서도 자기 싫다고 버둥거리다 아빠 뺨을 때리고 말았다. 착착 소리를 내며 아빠 뺨에 손을 부딪히는 게 재밌는지 몇 번 더 때리자 남편이 토라져 침대 구석으로 돌아눕는다.


"아빠한테 미안해~ 해야지."

"시-러!"

"왜 싫어? 이준이가 아빠 때렸잖아. 그럼 미안해~ 하는 거야."

"... 부끄러워."

"부끄러워? 아빠 싫은 게 아니고, 아빠한테 미안하다 말하기가 부끄러워?"

"응."

"아빠 좋아?"

"응."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아빠가 어찌 싫을 수가 있을까. 그저 지금은 시기적으로 엄마가 절대적 우세인 것일 뿐. 아빠가 싫은 게 아니고, 쑥스러운 말을 하기가 부끄럽다는 33개월. 아빠 시러! 하면서도 아빠가 없으면 "아빠가 엄네?", "아빠 어디이써?"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는 영락없는 아빠 아들.


나중에 더 크면 아빠랑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아빠랑 노는 걸 더 좋아할 거라고, 그때 가서 힘들다고 도와달라 하지 말라고, 내 든든한 육아 동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앞으로도 힘내서 육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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