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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Feb 14. 2023

배려하고 이해해 주며 육아를 하리라 다짐한다

이준이가 입원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


"왜 이제 왔어? 전화는 왜 내내 통화 중이야? 하루 종일 병원에서 아기 케어하는 게 보통 일 아닌 거 몰라?"


화를 낼 참이었다. 7시에 집에서 출발한다던 남편은 차로 15분 되는 거리임에도 30분이 넘어가는 시각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어린이집 다니며 다들 한 번은 걸린다는 폐렴을 이준이도 며칠 전 진단받아 어린이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째 되던 날이었다.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어휴, 이준이가 글쎄 오빠 오기 전에 링거 걸이를 쓰러뜨려서 주사액이 바닥에 다 쏟아졌지 뭐야" 하고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늘어뜨리려는데, "잠깐만, 나 전화 좀 받을게" 하며 남편이 서둘러 화장실로 간다. 일 관련 전화겠거니, 받고 나오면 못다 한 불평을 쏟아내야지, 하고 있는데 문밖으로 남편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사장님. 제가 설명을 안 드렸던 것도 아니고, 계약서에 다 있는 내용이고 사장님도 알겠다고 하셨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실적이 없어 힘들어하던 남편이 최근 실적을 낼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중 하나가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남편이 사 온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준이와 내 간식거리들과 내가 흘리듯 사 오라고 했던 물건들을 잊지 않고 사 와준 남편. 아마 나와 이준이가 있는 병원으로 서둘러 향하는 차 안에서도 업무 관련 통화를 끊임없이 했을 것이다.


이내 화를 절제하는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와 이준이와 놀아주는 남편을 보고 나는 '오늘 힘들었다,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되었느냐' 불평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준이가 잠들고 불 꺼진 병실에서 다시 집으로 향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조심해서 가, 하니 남편이 나를 안아주며 오늘 고생 많았어, 한다.


"오빠도 일하느라 고생이 많아."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이해해 주며 육아를 하리라 다짐한다.


2022년 어느 9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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