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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Aug 31. 2024

휴먼 테스트

사람과 동물 사이에 그 어디쯤

이름 : 김칠갑

나이 : 54 세

직업 : 무직 ( 프리랜서 배달업 ), 연쇄살인범

특징 : 죽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믿음


-어두운 밤, 비 내리는 골목


무척이나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긴 골목 안에 가로등은 저 끝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비에 다 젖은 몸을 내려다본다.

어깨로부터 툭 툭 떨어지는 빨간 빗물은 그의 몸에서 묻어 나온 피다.

손으로 쓸어내린 그 빨간 자욱이 손바닥에 적셔있다.

혀를 내밀어 그 손바닥을 핥아 쓰윽 빨아들인다.

영 그 맛이 아니다. 

'지랄이군.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오늘도 세상에 쓰레기 하나가 사라졌어.'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스스로도 대견함에 잠시나마 스쳐간 죄의식은 사라졌다. 


저 골목길을 지나 우측으로 조금 지나면 사내의 은신처이다. 

오늘의 작업은 그렇게 또 한 번 멋지게 성공한 타이밍이었다.


- 1시간 전, 칠갑의 원룸 

텅 빈 주머니에 꺼진 뱃속은 칠갑의 자존감을 세게 누루고 있었다. 

가까운 편의점조차 갈 수 없는 형편이라니 싶다. 

핸드폰의 화면에서 배달앱을 켜고 빠르게 올라오는 배달 주문을 확인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 단가도 주문도 몰리게 되어 있다. 

다들 이런 날은 일을 하기보다는 쉬려고 하고, 나가기보다는 편리한 배달음식을 선호한다. 

' 이거다. 팔천 원이면 괜찮네. '

배달 수락을 누름과 동시에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컵라면과 소주 한 명을 사면 된다. 

다행히도 오토바이에 기름은 남아있었다. 


" 쿠팡 주문번호 07.."

" 저거 가져가요."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비닐로 포장된 뭉치 하나를 가리킨다. 

식당 안의 공기는 음식 냄새와 삶의 무게로 아주 찌들어 있었다. 


칠갑이 배달할 곳은 길 건너 골목 안쪽의 모텔이었다. 

오토바이로 십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오르며 핸드폰의 또 다른 주문들을 확인했다. 

혹시나 한 건 정도 더 한다면 내일 아침도 해결할 수 있으니.


506호, 벨을 누르고 주변을 둘러봤다. 

침침하고 적막한 상태다. 

" 띵동.... 띵동 "

다시 눌러본다. 나올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다. 

가끔 문 앞에 놓고 그냥 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음식을 못 받았다고 하면 전부 칠갑의 책임이 된다.

" 탕.. 탕.. 탕.. 배달.. "

신경질적으로 열리는 문 사이로 탈의 한 상반신이 튀어나왔다. 

" 아, 씨발.. 뭔데 지랄이야. 그냥 놓고 가면 되잖아. 좆같네. 씨발 "

서른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남자가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잡아채며 말했다. 

" 뭐야? 안 가? 가라고.."

헬멧 넘어 칠갑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제 문 밖으로 맨발로 나와 선채로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 오빠, 무슨 일인데. 왜 그래? "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헷갈릴 만큼 입은 어린 소녀가 문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일까' 싶은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 오빠 나 빨리 가야 해. 다른 손님 예약 있다고. "


반응이 온다. 이런 인간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 

죽여도 되는 종족이다. 어쩌면 그가 죽여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다행히 주머니 안에는 칠갑의 분신과도 같은 날이 선 칼이 있었다. 

짧지만 손에 딱 맞는 그립감을 안겨준다. 

칼과 칠갑은 함께 춤을 춘다. 유연하게 강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승무의 모습과도 같다. 

아주 짧은 사이 그 의식은 끝이 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텔을 빠져나온다. 


-어두운 밤, 비 내리는 골목


칠갑은 배고픔도 잊고 긴 골목 안으로 몸을 숨긴다. 

내일이면 경찰과 형사가 골목 여기저기를 누빌 것이다. 

배달원, 50대 초반 나이. 오토바이 번호, 통장 및 핸드폰 번호 등이 특정되어 

이번 살인 사건의 용의자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칠갑은 벽을 대고 누워 생각한다. 

'병신들, 지랄하고 있네. 니들은 나를 잡을 수 없어. '


칠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주민번호는 가져보지도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 잠시 동안의 엄마에 대한 기억과 차별, 그리고 굶주림과 원망이다. 

' 이제 이 동네도 떠나야 하겠네. 바닷가.. 그래 바다가 보고 싶네. '


잠든 칠갑의 눈이 발작하듯 요동친다. 그 두 눈 사이로 땀인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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