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최진수
- 나이 : 31 세
- 직업 : 소방공무원 구급대, 소방사
- 특징 :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판단하자.
- 소방서 사무실 실내, 월요일 오전
" 축하해, 너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수고했어. "
진수는 소방사 시보로 있는 후배 용식의 어깨를 툭 치며 이야기했다.
"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배님, 어제 사고가요, 참 이상하기도 하고,
또 내가 예민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
용식의 어제 사고 경위는 이랬다.
" 제가 오래간만에 오프이고 주말이고 여자 친구와 함께 일정이 쓰리 콤보로 맞아서 대망의 춘천을 가기로 했거든요. "
화면은 차창 밖으로 비춰주며 고속도로 위를 바라본다.
- 경춘 고속도로, 맑은 날씨, 적당한 차량들이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 이제야 좀 풀리네. 서울을 벗어나는데만 1시간이 더 걸렸어. 에고 다리야. "
용식은 창문을 열고 외부의 공기를 입으로 빨아들이는 모습을 한다.
보조석의 여자 친구는 어느새 잠들어 있다. 어제도 분명 야간 당직을 풀로 뛰었을 것이다.
예약한 펜션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기도 굽고 맥주도 한잔할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편도 3차선 고속도로로 1차선은 추월 차량이 2,3차선은 일반차량과 화물차량이 주행 중이었다.
제한속도는 100킬로 지만 다들 약간씩 오버하는 분위기였다.
용식은 2차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달렸다. 가평휴게소를 지나면서 앞 차들이 빠르게
추월 차로로 빠져나갔다. 몇몇 차들은 1차선의 차들과 스치듯이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을 옮겼다.
대략 2,3킬로를 더 갔을까 싶을 때, 용식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3차선에는 대형 화물차가 2차선에는 노란 봉고 차량이 90에서 100 키로의 속도로 차선을 막고 있었다. 크게 쓰인 글씨에는 '나를 따르면 생명을 얻으리라'라는 글씨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용식의 뒷 차량들도 빠르게 추월해 갔다. 죄 측 깜빡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밀고 들어오는 차량들은 용식이 들어갈 틈을 절대 주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어떤 차는 상향등과 함께 클랙슨을 크게 울렸다.
" 안 간다. 안가. 더러워서. " 용식은 투털거리며 추월을 포기하였다.
그때였다. 1차로를 마구 앞서거니 하며 달려가던 차선 앞쪽에서 '쾅, 끼익' 하는 굉음과 함께
갑작스러운 부산함과 2,3차로 모든 차선에 비상등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았다.
보조석의 여자 친구도 잠에서 깨어났다.
" 오빠, 뭔 일이야? 어디 시고 난 거? "
차량이 미사터널을 진입하고 몇 분이 흘렀을까, 터널 안에서는 쾌쾌한 냄새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비상등과 함께 차량들은 멈추었고 터널 안은 검붉은 연기가 더욱 심하게 퍼져 나갔다.
용식이 있던 차량과 불과 서너 대의 차량 앞에서 추돌사고와 함께 차량에서 불이 치솟고 있었다.
조금 전 용식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빵빵대며 앞서가던 차량들이었다.
차량을 갓길에 세운 용식은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비상소화전을 찾아 소방 호수를 연결하였고 차량의 불길을 진화하였다.
용식의 여자 친구는 차량 내부에서 겨우 탈출한 사람들을 터널 외부로 끌어내어 안정된 호흡을 유도하였다.
자칫 대형사고도 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자욱한 연기와 어수선한 사람들 사이에서 방금까지 용식의 바로 앞을 달리던 노란 승합차는 눈앞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노란 승합차를 제치고 추월을 하였다면 용식의 차량도 저 터널 안의 사고 차량과 함께 있었을지 모른다.
- 소방서 사무실 시내, 월요일 오전
뉴스 화면에는 시청자들의 제보 영상으로 어제 사고 화면이 나오고 있다.
" 용감한 시민의 즉각적이고 빠른 대처로 인하여 대형사고를 막은 것입니다.
현재 이 영상의 시민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있는데요. 서울 소방서의 구급대원이라고 합니다. "
반복 화면과 앵커의 멘트가 소방서의 tv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용식은 진수에게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의미로 엄지 손가락을 세워 최고라는 사인을 보냈다.
" 출동, 긴급출동. 명문시장 내에 화재 발생. "
조금 전에 한가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각자의 장비와 안전복을 챙긴 대원들은 빠른 동작으로 소방차와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차량 안에서는 현재 피해 상황에 대한 무전과 밖으로 퍼지는 사이렌 소리로 긴장감을 더했다.
시장 안에서의 화재는 좁은 통로와 밀집된 공간으로 화재가 번져 나갈 확률이 크고, 사람들이 몰려있어 인명 피해 또한 커질 수 있기에 진수 역시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지역의 소방차들까지 합세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장 골목을 사이로 2개의 4층 건물이 있었고, 그 사이로 길게 난 골목 안쪽에는 복잡한 구조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4층 건물의 대부분은 연기와 불길로 가득 차 있었고, 그나마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수건과 옷가지를 흔들며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소방차의 물소리, 여기저기 경찰들의 무전기 소음이 사람들의 아우성을 묻고 있었다.
" a동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
" 뭐라고요? 지하층에 사람들이 있다고요? "
" 네. 지하 1층에 식당이랑 교회가 있어요.
1층 올라오는 입구 쪽에서 불길이 세서 아마 올라오지 못했을 거예요. 비상구는 반대쪽에 있는데, 거긴 물건들이 쌓여있고요. "
시장 건물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리키는 그곳 입구는 시뻘건 불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 가자."
도끼와 방독면을 챙기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우리 앞으로 하얀 두꺼운 물줄기가 입구를 적시고 있었다.
십여 초 정도의 길을 내어줄 뿐이었다. 연기와 물이 만들어낸 습기는 방독면의 시야를 가렸고, 매캐한 그을음과 타버린 재의 냄새는 호흡을 곤란하게 하였다.
불과 연기와 싸우며 지하로 겨우 내려갈 즈음 지하로부터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여기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
"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
" 여기 사람이.... 콜록,, 콜록... 숨을 쉴 수가 없어요. "
" 최대한 낮은 자세로 바닥에 엎드리시고..."
최대한 몸을 숙여 통로를 확보하면서 지하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약간의 부상과 불길로 인한 화상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하게 대피해 있었다.
" 저 안쪽 교회로 쓰는 예배당에 사람들이 갇혀 있었어요. 그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요. "
소방호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와 건물 위층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 발목까지 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큰 불은 잡히고 간간히 작은 폭발음이 멀리서 들리곤 했다.
그 안쪽으로 식당과 통로 사이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이들이 보였다. 마지막까지도 그곳을 탈출하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벗어나려 했을 것이다.
" 지하 1층에 다수의 사상자 발견. 지하 1층 다수 사상자 발견. "
진수는 무전기에 현재의 상황을 알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죽은 이들의 텅 빈 표정과 몸부림치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도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일 것인데...
- 복귀하는 구급차량 실내, 저녁
창 밖으로는 밀리는 차량과 도시 모습이 겹쳐진다.
만원 버스는 그 옆을 지나가고, 멀리서 달려오는 배달 오토바이는 큰길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 지금도 퇴근하고, 누군가는 식사를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살겠지. '
차량 안에서 들리는 심박수 소리는 점점 커지고,
사이렌 소리와 심정지 경고음이 진수의 뇌를 찌른다. 머리를 두 선으로 감싸고 몸을 꼬듯이 웅크리지만 점점 더 하얗게 진수의 몸이 녹아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