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아름다운 나이가 됐나 봅니다.
존재 이유와 성찰이 사치로 치부되고,
현재를 담보로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야 하고,
함께 가는 길이 아닌 앞서가는 길이 옳은 줄 알았던
그 시절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그리워지니 말입니다.
그 시절 우리는
야간자율학습 시간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강당 커튼 뒤에 숨어 존재 이유를 고민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조그맣고 초라한 우리가
삶을,
삶의 지향점을,
삶의 가치를,
늦은 밤까지 한 뼘도 안 되는
우리처럼 더할 수 없이 좁은 공간에서
고민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해결될 줄 알았지요.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있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걷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추억의 공간에서만 살아 숨 쉬는 너.
새끼손가락의 다짐은
혼자만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했다고 믿었던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생각도 못한 너의 부재는
스무 살에도,
어른이 된 지금에도,
외롭게 영혼을 갈아먹고 있습니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리운 것은,
그곳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네가, 내가, 우리가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