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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Dec 16. 2024

여권 사진

여든을 훌쩍 넘긴 당신은 여전히 곱습니다.

당신의 건강을,

당신의 동안을,

당신의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당신의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함께 갑니다.

당신은 염색하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귀찮음을 얘기하는 당신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저의 바쁨과

당신을 위해 겨우 몇 시간 할애한 시간을 애써 생색냅니다.

당신과 들어간 사진관.

몇 만 원이 비싸다는 이유로 사진관을 나옵니다.

사진관을 나오는 당신의 발걸음은 머뭇거립니다.

뭔가 말하려 하는 당신의 말을

이번에도 한 귀로 흘립니다.



즉석 사진관을 찾고,

당신의 즉석 사진이 나옵니다.

당신은 그 사진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눈가에 어린 절망,

당신의 애잔한 눈빛,

당신의 떨리는 손을 보고서

비로소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당신의 사진을 서둘러 집어넣고,

서둘러 일을 마무리합니다.  



며칠 후 다시 만난 당신은 곱게 염색을 했습니다.

곱게,

까맣게,

염색한 당신의 머리카락이

알량한 저의 생색을 채찍질합니다.

어느새 당신의 고운 얼굴은

무심한 자식을 닮아

하루하루 늙어갔습니다.

당신의 젊음으로 무럭무럭 컸던 우리는

당신의 일상을 외면합니다.

당신의 건강을,

당신의 동안을,

당신의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고 착각한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맘 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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