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실험실의 상황과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려 시도하는 세 가지 주요 이유는 첫째로, 우리는 앞 장에서 실험실의 성취와 실험실 구성원들에 의해 부여되는 신뢰가 세 가지 재료(TRF, LRF, 소마토스타틴)에서 결과했음을 언급함. 둘째로, TRF의 구성에 대한 분석은 다룰 수 있을 만한 규모로 판명됐다. 이는 TRF와 관련된 논문과 주요 참여자 인터뷰, TRF 실험에 대한 두 집단의 비교, 문서(고) 등 사실의 사회적 구성을 분석하는데 기초가 됐다. 셋째로, TRF(H)는 잘 정의된 분자구조를 가진 대상으로 사회적 구성의 과정을 증명될 수 있다면 과학인류학의 접근-탐구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맥락 속의 TRF(H)
우리는 TRF가 무엇인지에 관한 지식적 접근보단 그것을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변하는 방식을 규정하는데서 접근한다. TRF(H)을 많은 사람들은 티로트로핀 방출자(호르몬 : thyrotropin releasing factor)라고 연결 지어 생각한다. 이를 과학(의학)집단에서 내분비학 안에 위치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TRF는 뇌하수체의 잠재적 기능부전을 막아내는 사용 시험과 수천 명의 내분비학자에게 TRH는 그들의 학제 내부에서 인기 있는 세부 분야이다. 내분비학자의 TRH를 포함한 논문 698편(1975년 기준) 등이 있다.
1962년과 1970년 사이에 25인이 못되는 한 그룹이 TRH의 분리를 베타적으로 다루는 논문 62편을 출간했다. 80%의 주요 인용 논문은 8편의 논문(1969년 1월과 1970년 2월 사이에 출간된 논문)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출간된 논문의 수, 인용의 패턴, 저자의 출신 학제, 세 가지 요인을 두 개의 연구자 공동체(내외부)로 구별했다. 실질적으로 기유맹과 샬 리가 이끈 두 집단에 대한 관찰이다. TRF와 TRH의 문제는 둘 용어의 기준 없는 혼용 사용이다. 관찰팀은 “실질적으로 TRF였던 것이 그 밖의 다른 곳에서 TRH로 잘못 언급되었다고 이야기 되었다.” 즉 그들이 (기존)호르몬(H)으로 파악했던 것이 실제로는 (새로운 물질)인자(F)였다고 논의 되었다. 또한 각 연구팀(기유맹, 샬리)은 물질의 발견 시점 주장도 각기 달랐다. 그렇지만 외부인들은 발견 시점에서 논쟁은 이어가질 않았다. 그 이유는 논쟁적인 과학성취보다는 도구로서 TRF(H)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부 전문분야의 분지: TRF(H)의 분리와 특성 부여
우리는 1962년 이후에 TSH 분비를 조절하는 원리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에 관심을 둔 논문을 인용하지 않고, 왜 뇌에 의한 TSH 조절에 대한 최초의 진술이 만들어졌는지를 파고들었다. 그 이유는 첫째, TSH에 대한 진술은 1962년 이후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TRF(H)의 후속 연구가 시작되었다. 둘째, 사실의 구성에 관한 이해를 하나의 특수한 에피소드(세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우선 1962년과 1969년 사이 출간 논문의 수를 파악했다.(그림 3.2 참고) 둘째, 인용이 높게 나타난 논문을 살펴보았는데, 1966년 새로이 인용된 물질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 샬리 그룹에서 실험(논문) 접근에 사실을 확인했다.
전략의 선택
논문 출간과 인용의 관점에서 연구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려는 실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이익이 존재한다. 실제로 1962년까지 TRF가 아닌 여러 호르몬이 발견되었고, 이에 따라 내분비학은 완전히 전환을 맞았다. 그렇게 TRF(H) 연구 프로그램은 계보적 추론보다는 미래 지향적 결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1962년까지 시상하부의 다른 인자(Factor)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 호르몬과 통칭되는 인자로만 용어가 사용되었다. 시상하부의 인자들은 화학적 탐구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둘째, TRF 연구의 시작은 새로운 인자들의 존재와 이 인자들의 펩타이드(두개의 아미노산)를 가정하고 출발한다. 뇌가 뇌하수체를 조절한다는 개념처럼 옥시토신이나 바소프레신처럼 알려진 인자들의 조절(기능)이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물질을 분리, 특성을 규명하는 전략은 이미 미국 화학자 빈센트 뒤 비뇨(1901~1978)에 의해 확립되었다. 중요한 건 연구팀이 분별하기 위한 물질의 구조의 분석은 앞서말한 뒤 비뇨의 것보다 더 작은 단위로 증명해야했기에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를 생리학자와 화학자간의 의견이 달랐으며, 결론적으로 생리학자 기유맹과 샬리의 전략대로 실험은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TRF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새로운 투자에 의한 공존하고 있는 노력의 제거
증명되기 어려운 상황은 기유맹은 1962년 이후 논문을 쓰지 않았다는 것과 증명의 정의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새로운 규칙 집합의 관점에서 하부 전문 분야의 재정의가 필요했다. 기유맹의 논문은 기초를 갖고 있지 않은 주장과 우아한 가설들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인공물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과거에 대한 재구성과 미래에 있을 성립 가능성, 또는 새로운 맥락안에서의 인공물의 성립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설계된 기준을 제안했다. 따라서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제약은 새로운 연구 목표와 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 수단이 정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제약의 결과로 시부자와, 슈라이버, 해리스와 같은 연구자들이 배제되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새로운 대상의 구성
우리는 TRF의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파악함으로써, TRF가 창조된 영역을 조사함으로써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고전적 내분비학의 관점과 전략적 결정의 기인해 사실상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 새로운 대상을 정의하기 위해 사후관점(hindsight)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매우 결정적 결함이었다. 중요한 것은 TRF가 구성된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어떻게, 어디서, 왜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봐야한다. 기유맹 그룹에서 출간한 논문에서 구성 맥락을 보여준다. 첫째, 기술적 인용 대부분은 다른 TRF 논문을 다루는 TRF논문에 의해 이뤄졌다. 둘째, 하부 전문분야에서 처음 몇 년 동안 출간된 논문들이 두드러지게 인용되었다. 이들의 초기 논문이 미래의 작업에 대한 기술적 기초를 형성했던 것이다. 셋째, 몇 가지 기법은 다른 프로젝트에서 빌려온 것이었다.(ex LRF와 CRF 검정). 넷쨰, 수 맣은 기법이 인접 분야(통계학, 효소학 등)에서 도입되었다. 외부의 차용은 TRF분야 발전에 결정적 지점을 발생했다. 동시에 이러한 기법의 누적은 견고성을 갖게 되었다.
TRF의 펩타이드 성질
1966년까지 실험의 절차 선택과 분석 도구 사용의 기초 가정은 TRF가 펩타이드라는 것이다. 1966년까지 시험에 사용된 효소의 목록이 늘어났지만 요구된 방식으로 활성을 파괴할 수 없었다. 몇 년 뒤, 추가된 한 가지 효소가 분별물의 활성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물질은 이미 펩타이드로 증명(정의)되었다. 샬리는 새로운 가설연구로 작은 펩타이드성과 커다란 비펩타이드성으로 구성됐다는 결과를 입증했다. 기유맹은 방법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샬리는 전략에 관해 이야기 했다. 샬리는 화학 분야에서 훈련했기에 TRF프로그램의 정제 부분을 직접 감독했고, 생물학적 검증은 생리학자에게 의존했다. 기유맹 그룹은 총 24편의 논문을 출간하고, 이차 연구로 샬리 그룹은 17편의 논문을 출간했다. 두 집단은 인용의 수만 아니라 인용의 성격까지 고려하면 비대칭은 더욱 두드러진다.
1966년 샬리는 TRF가 폴리펩타이드가 아닐 수 있다는 기유맹의 제안으로 논문을 출간한다. 아미노산은 세 가지 아미노산인 히스티딘, 글루탐산, 프롤린으로 70%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었다고 증명한다. 1968년에 이르러 TRF논문은 구조에 대한 전략과 연구과제 성격의 결과적 수정을 수반했다. 이는 첫째, 실험그룹은 생물학적 검정을 얻기 위해 내분비학보다 더 확립된 영역에 의존했다. 둘째, 펩타이드 화학으로부터 정제 기술을 빌려왔다. 셋째, 실험그룹은 막대한 양의 뇌 추출물을 축적했다. 이런 삼중 변화는 연구 기준을 크게 향상 시켰다.
가능성들을 줄여가기
정제된 분별물에 대한 생물학적 검정은 결과로 나타나는 기록이 수십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드러운’기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미노산 분석(AAA)는 각각의 기록과 부합하는 진술들의 수가 적다는 의미에서 ‘단단한’기법이다. 분석화학의 사용은 세 가지 아미노산이 분자 안에 나타난다는 점을 증명해줬다. 이처럼 각각의 새로움 실험은 대안적 설명의 범위를 재정의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화학자 버거스는 TRF가 그저 펩타이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69년 버거스는 활성화 되지 않은 펩타이드에 대해 샬리와 달리 N번째 말단에서 무언가가 이뤄여쟈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여섯 개의 펩타이드에 대한 더 나아간 조작을 필요로 한 것이며, ‘아세틸화’로 알려진 것이 그런 한 가지 조작의 결과라고 했다. 세 가지 아미노산의 분포 대신 R-Glu-His-Pro 서열이 생물학적 활성에 필수요소로 보았다. 펩타이드 화학의 조직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질량분석기를 사용했고, 크로마토래프 사용만으로 TRF구조가 다를 수 있다는 대안적 해석을 제안할 수 있었다. 이후 TRF는 Ryro-Glu-His-Pro-NH2을 확립했다.
우리는 TRF가 철저하게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의 논리적이고 간명한 특성에 대한 믿음이 해석의 실천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우리는 해석의 과학적 실천의 논리와 해석의 비과학적 실천 사이의 차이가 어떻게 해서 실험실 내부에서 창조되고 유지되느냐를 관찰한다.
대화 속 사실의 구성과 해체
과학에서 사실 구성의 미세 과정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실험실 구성원과의 대화와 토론을 살펴볼 것이다. 연구자 플라워(10년차 연구자)와 윌슨(1년차 연구자)의 대화에서 공동 논문을 작성하는 일에서 실험전 초고가 작성된 이후 계획되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들은 인식론적 기초가 실험평가에만 의존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과학 활동의 인식론적 또는 평가가 사회적 교섭 작업을 하도록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방식의 의사교환은 ‘알려진 사실’에 대한 참조를 측징으로 했다. 다음은 디터와 로즈의 대화에서 의사교환은 교과서처럼 진술하는 형태였다. 이러한 의사교환은 검정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실천적 활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장점은 정보 공유와 확산 기능 그리고 현재 관심사와 간계가 있는 과거의 실천, 논문, 착상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기술자간 또는 기술자와 연구자 사이에서 일어난다. 세 번째 종류의 의사교환은 이론적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경우다. 존과 스펜서 사이에서 토론은 앞서 실험자의 초록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학제의 미래와 실험실 속 연구가 취할 방향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무언의 결과 값에 있다. 네 번째 종류의 토론은 특정 개인을 평가하는 토론이었다. 이것은 종종 특정 논문의 논의에 관한 언급이 이뤄지는 경우다. 스미스와 리커트는 각 실험실의 초급 연구원이 쓴 초록에 관한 토론이었다. 그들은 초급 연구자의 인격에 대한 평가였다. 진술의 생산에서 인격(인간의 작용)에 대한 평가는 매우 흔한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참가자는 복잡한 과학사회학과 과학심리학을 구성했다. 이렇게 모든 대화에 대한 포괄적 분석에서 대화 재료가 가져오는 기회를 몇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대화 재료는 과학자들의 토론에서 각각의 관심과 몰두가 서로 맞물려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순수하게 서술적이고, 기술적인, 또는 이론적인 토론을 파악하는 일의 어려움을 나타낸다. 구체적인 논의보다는 맥락과 정보교환 수준에서 대화가 끝난다. 셋째, 과학자들의 (실험/연구)상황이, 일상생활의 (임시변통)마주침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사실 구성이라는 관념을 사용해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사고 과정’의 사회학적 분석
어떤 일화 또는 사물에 관한 진수을 특수한 장르에 구체적 이야기로 단순화 시키는 것은 양식사의 기초다. 이는 일정한 법칙들에 복종하는 이야기로 취급한다면, 사실 구성의 분석을 확장시키는 일, 그리고 착상과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이해하는 일, 둘 모두가 가능하다. 우리의 논의는 사고 과정이 사회학적 연구를 즉시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점, 나아가 연구의 중요한 초점인 사고 과정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실천의 측면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과 인공물
사실의 어근은 ‘만들다’ 또는 ‘하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실은 존재자의 ‘바깥쪽 저기에 있음’을 뜻한다. 사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의 자취를 탐지하는 일과 그것을 방해하는 일 등이 진술을 추적하는 것, 즉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진술이 ‘바깥쪽 저기에 있는’ 어떤 것과 ‘실질적으로’ 관계되느냐 또는 상상의 산물이거나 채용된 절차의 인공물이냐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실재론과 상대주의 간 논란을 철학자에게 남겨버리고 과학 활동에만 전념한다. 결과적으로 과학자들은 어떻게 논쟁이 결정되고, 실제적이며 잠정적인 성취로 여겨지게 되느냐를 이해하기 보단 연구 주제와 동일한 종류의 논쟁에 참여하는 일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진술의 분리와 전도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첫쨰, 과학적 실재에 대해 동어반복, 옹호하는 논변에서 인용할 가치가 있다는 덧붙임으로 명증하는 ‘과학 지식의 자동사적 대상’으로 전도된다.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의 의미에서 상대주의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바깥쪽 저기에 있음’이 과학 연구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과학 연구의 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