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후소
3-8) 자하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밑그림 위의 아름다움이여!'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먼저 밑그림이 있고,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자하가 "그렇다면 예(禮)란 밑그림 뒤의 그림일까요?" 라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깨워주는 사람이 바로 너로구나! 오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詩)를 논할 만하도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밑그림 위의 아름다움이여!"
는 "교소천혜巧笑倩兮,미목반혜美目盼兮,소이위현혜素以為絢兮" 라는 시(詩)를 번역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회사후소라고 답한다. 이는 밑그림을 그린 후에 색을 칠하거나, 나머지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다. 또는 과거에는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비단을 먼저 하얗게 칠한 후에,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하얗게 바탕칠을 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팔일제3에서는 꾸준히 예(禮)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문답에서 자하는 "예가 뒤라는 말씀이십니까?(禮後乎)"라고 되묻고 공자는 자하의 물음을 칭찬한다. 예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사치스럽기보다는 검소하고, 장례를 능숙하게 잘하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라는 것은 후순위(後)다. 사람들은 흔히 유교는 허례허식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사상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유교의 창시자에 해당하는 공자는 예를 나중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인가?
13-18)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으니, 그 아버지가 남의 향을 훔치자, 아들이 부친을 (관아에) 고발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과 당신이 말한 정직한 사람은 다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하여 숨겨주고,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주니, 정직이 바로 그 가운데 있습니다"
자식이라면 부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직(直: 올곧다. 정직하다. ) 한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아버지를 고발하였으니, 이는 사실 직(直) 하지 못한 것이다. 공자는 오히려 정직함이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자식이 아버지를 숨겨주는 것이고, 아버지가 자식을 숨겨주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공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내면적 도덕성인 인(仁)을 실천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예는 나중이며, 인(仁)이 먼저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한 내면적 도덕성을 뒤로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허례(虛禮)를 실천한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의 진실한 도덕성을 자각하고, 이것을 시작으로 삼아 예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