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우물

by 유별




화가 난다. 화가 많다.

화가 이토록 솟아나다니 대체 내 안에 얼마나 깊은 우물이 자리잡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평소엔 잊고 산다. 불시에 누군가 돌을 던진다. 어김없이 본색이 드러난다.

우물 가득 쌓인 화를 두레박으로 퍼낸다. 퍼내고 퍼내도 다시 고인다. 대부분 죽고 사는 일 아니면, 존폐위기에 놓인게 아니라면 그저 넘기자 마음먹지만 어렵다. 화를 내뱉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끝이 텁텁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화가 없는 사람은 엄마다. 가족들에게 가장 만만한 것도 엄마다. 그저 묵묵히 받아 줄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 어떤 힐난과 공격도 그녀를 무너뜨릴 수 없다. 엄마에겐 화가 완전히 메마른 것 같아보인다. 아주 오래전 실재했던 흔적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생존을 위해 '화'라는 감정이 억눌려 퇴화된건 아닐까.

그런 엄마의 성정을 본받고 싶으면서도 만일, 본인빼고 모두 상전이라던 엄마의 인생을 따라가야한다면 그건 쎄다.


차라리 이상기후로 바다가 마르고 빙하가 녹듯 나의 심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도래해 화가 차오르던 우물이 증발할 날을 기다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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