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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담 Sep 29. 2022

퇴근하겠습니다. EP2. 취업에 대하여

면접이라 쓰고 훈계라 읽는다.

“아들 잘 지내고 있니…? 이제 충분히 제주도 생활을 누린 것 같은데… 회사에 취업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들이 양복 입고 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나는 한동안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네, 생각해볼게요.”


그렇게 한참 정적이 흐르다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해도 이 생활은 현실이 아니라 꿈같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활이 황홀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 놓고 여행할 정도로 자유를 누려본 적 없었기에 제주도에서의 갑작스러운 자유가 낯설게 느껴진 것도 맞다. 그래서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누구라도 붙잡아주길 바랐다. 동진이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는 아쉽긴 하지만 이제 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나를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구인 구직 사이트에 내 이력서를 등록했다. 대학교에서 교수님의 재촉에 떠밀려 졸업 전 급하게 따놓은 자격증 덕에 그나마 구색을 갖춘 이력서가 되었다. 등록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당연히 보이스 피싱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한편으로는 기대감으로 전화를 받았다.


자본주의를 목소리로 표현한다면 딱 이런 목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친절한 목소리였다. 2시쯤 되었을 거다. 이 시간에는 주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라 허겁지겁 고무장갑을 벗고 전화를 받았다. 낭랑한 목소리의 여자는 한국무역협회 취업지원센터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전화를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네 센터에서 무역을 전공한 취준생들과 유망한 무역 회사를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내가 적합할 것 같다고 하며 나를 회사에 소개해도 되느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자기들이 찾아 헤매던 조건의 인재라는, 너무나 진부하지만 달콤한 유혹에 품고 있던 의심이 눈 녹듯 풀렸다.


그러고 3일 지나 모르는 번호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강한 인터내셔널 인사팀입니다. 김연우 지원자님 맞으실까요? 저희가 김연우 님을 소개받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이틀 뒤에 1차 면접이 있는데 참석 가능하신가요?”


그때 전화 통화를 끝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리 추천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바로 면접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네…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문자로 자세한 내용 공지해 드릴게요.”


서류전형 합격통보

분명 전화상으로는 1차 면접만 보고 합격하면 일주일 뒤 2차 면접이라고 했다. 그런데 1차 면접 후 갑자기 담당자가 이사님이 오늘 밖에 시간이 안되신다는 이유로 불러 세웠고, 얼떨결에 2차 면접까지 한꺼번에 보고 왔다. 3명의 지원자가 더 있었는데, 그중 2명은 떨어졌는지 나와 같이 남은 1명의 지원자가 2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야 그들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빠져나갔음을 듣게 되었다.) 2차 면접은 사실상 회사 자랑과 훈계 말씀에 가까웠다. 장장 4시간에 걸친 면접을 마치고 온몸에 진이 빠져 터덜터덜 회사 정문을 빠져나왔다. 무슨 면접이 1시간 넘게 이사님 혼자 말하다 끝이 나는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날 자신을 팀장이라고 밝힌 한 남성에게 전화가 왔다. 합격을 축하한다며 일주일 뒤 구비서류를 챙겨 출근하라는 말과 함께. 통화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부리나케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나는 이렇게 얼렁뚱땅 취업을… 당해버렸다. 다음날 병원에 들러 건강검진을 받았고, 동네 행정복지센터를 들러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출근 준비에 정신이 없어 제주도에서의 4개월은 추억을 정리할 새도 없이 한 겨울밤의 꿈으로 남았다.


터널을 통과하자 지하철 차창 밖에는 한강이 아침 햇살에 일렁이고 있었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렸다. 열차 안 모든 사람들이 잠실역에서 내리는 듯했다. 앞다투어 나가는데 내 뒤에서 미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내 등을 미는 뒷사람의 찝찝한 손길에 기분이 상당히 나빴지만 그 정신없이 혼란한 틈에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하며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에는 회사가 잠실에만 있나!!”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구시렁대며 빠져나왔다.


[사진 & 이미지 출처] MinUK, HA @ha_r_u_247 / 김유인, @studio_yoo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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