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역 4번 출구로 빠져나왔을 때 손목시계는 8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는 단 17분이 남아있었다.
첫 출근에 지각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 가장 질색했던 유형의 손님이 지각하는 손님이었다. 물론, 손님들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는 늦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미리 연락만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연락 한 통 없이 체크인 시간을 훌쩍 넘겨 들어오는 손님들에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 손님들이 체크인을 할 때까지 맘 편히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손님들은 꼭 내가 무언가 열중해서 하고 있을 때 체크인 수속을 해 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마디 불평 없이 게스트 하우스로 직행해야 했다.
그래서 한 손에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수많은 인파를 지나치며 뛰어갔다. 그러다 왼쪽 코너 반대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혀 가방에 왕창 들어 있던 소지품이 와르르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나는 내 소지품 위에 놓여 있는 꽃바구니를 들어주며 물었다.
“네. 개안습니다.”
그 남자의 손은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사투리와는 반대로 새삼 분주하게 나의 소지품들을 모아주었다. 나는 그 남자의 호의가 무척 감사하긴 했지만 내가 챙기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시간에 쫓기 듯 불안하기까지 해 보이는 그를 먼저 보내주었다.
흘리고 간 명함
그렇게 그 사람은 헐레벌떡 꽃바구니를 챙겨 떠났고, 그 자리엔 남자가 흘린 듯한 명함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도로 위에 놔두면 그냥 쓰레기가 될 것 같은 명함과 함께 내 소지품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아무리 바빠도 정리정돈을 잘해야 다른 일도 잘 풀릴 것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 때문에 나름의 순서를 가지고 하나 씩 정리했다.
맨 처음 두툼하고 손때 묻은 다이어리를 집었다. 언젠가부터 일정은 꼭 다이어리에 수기로 써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 친구가 추천한 일정 관리 어플을 5000원 주고 샀지만 500원 치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A5 사이즈의 다이어리를 무식하게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그다음으로는 나의 묵직한 가방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467페이지짜리 ‘공인중개사 한방에 합격하기’. 사실 나도 C브랜드의 E-BOOK 리더기를 진작에 구매해 가방에 고이 모셔두었다. 리더기를 처음 산 날 나도 모르게 액정 위에 샛노란 형광펜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책에 줄을 그어야지만 책을 제대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