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으면서 그는 묻지도 않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늘 점심 메뉴가 어떻다는 둥 자기 사수가 다음 달에 결혼한다는 둥… 일주일 정도 봐온 성민의 모습은 무역 회사보다는 쇼미 더 머니 경연장이 더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정겹게 느껴지면서 어쩌면 내가 그의 입담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이야기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그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집에 간다는 것이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발맞추어 걸음이 빨라질 때 즈음 성민씨가 갑자기 내 팔을 붙들며 이야기했다.
“형님 어디 가세요??”
“네? 당연히 지하철 가죠…”
“엥? 저희 통근버스 있어요~!”
“…아… 몰랐어요. 통근버스가 어디까지 가나요?”
“이 쪽 방향은 홍대입구역까지 가요.”
나는 입사 일주일이 넘어서야 유일한 동기인 성민씨의 입을 통해 통근버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하여튼 말 많은 성민씨 덕분에 오늘부터는 퇴근 길이 좀 편해질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성민씨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이즈 캔슬링 모드로 전환했다. 창가 커튼을 열어젖히자 노을이 눈에 가득 담겼다. BGM이 없으면 안 되는 풍경이었다. 첫 곡으로 김필의 ‘결핍’을 틀었다. 그러고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답답한 청춘의 노랠 매일 불러봐도 모두가 당연히 그것만 바라보네 증명하는 시간은 곧 지겨워져 별 감정 없이 누구의 마음에 드는 일도 누구라도 좋으니 내 얘길 좀 들어줘
오후 6시 10분,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통근버스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차 안의 공기가 무겁고 분위기가 삭막한 것은 1분이라도 빠른 퇴근을 원하는 모든 임직원들의 염원이 담겨 있으리라 믿는다.
차창 너머 바라본 도로에는 차들이 버스를 추월해 바쁘게 달리고 있다. ‘저들 또한 치열한 하루를 보냈겠지.’ 닿지 않을 공감을 마음속으로 해본다. 그 너머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들이 보인다. 그 뜨거운 불빛 아래 아직도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일하는 저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심심한 격려를 보낸다.
그러다 피곤함에 못 이겨 깜빡 잠이 들었다. 기사님이 내릴 역에 도착할 때 즈음 전등을 켜신 모양이다.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일어났다. 눈을 떠보니 홍대입구역이었다. 옆을 바라보니 성민씨는 이미 내리고 없었다.
[사진 & 이미지 출처] MinUK, HA @ha_r_u_247 / 김유인, @studio_yoosoo / 김필,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