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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ug 22.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1

경주는 한국인 마음속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넓지 않은 한반도에 특별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만, 경주는 다르다고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서 경주에 대한 애정이 시작됐다. 신혼여행과 가족여행에서 시작된 사람들도 있다. 사연은 다양하다. 오랜 시간 추억이라는 두터운 나이테로 둘러싸인 경주는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 한편에 그리움으로 자리하고 있다.      





90년대까지 경주는 최고의 수학여행지로 각광받았다. 교통의 편리성도 있지만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는 선택지가 많지 않던 그 시절 수학여행 취지와 잘 맞았다. 인기가 한창일 때는 유스호스텔이 밀집된 보문단지에 숙소 예약을 하는 일이 그리 어려웠다는 선배 교사들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스무 명도 넘는 학생들이 한 방에서 3박 4일을 보냈던 나의 첫 수학여행을 떠올렸다. 학생들이 차고 넘치던 그때가 절판된 옛 소설처럼 느껴진다. 요즘의 경주는 황리단길을 필두로 경주랜드, 경주 최 씨 고택 등 sns 핫플레이스가 많아졌다. 젊은 연인들도 찾는 곳이 되었고 아기자기하고 쾌적한 숙소들이 많아졌다.  


올여름 친구들과의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필히 고려돼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식도락과 액티비티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이미 전라도, 강원도와 해외까지 다녀왔던 우리에게 경주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결정은 쉬웠고 여행 당일 아침은 이른 시간부터 몹시도 더웠다. 


여행을 떠날 우리 세 명은 용산역에 모여 ktx를 타고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미리 검색한 식당까지 렌터카로 이동했다. 허기진 상태로 식당을 찾아갔지만 큰 기대는 안 했다. 실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경주에서 음식으론 만족했던 기억이 없었기에 미리 검색해 보고 간다 한들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찾아간 감포항의 한 물횟집은 외관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인적이 드문 항구에 커다란 소나무를 뒤에 두고 자리한 가게는 바다의 쪽빛을 비추듯 시퍼런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옛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가게의 2층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커다란 바다가 바람과 함께 창으로 흘러 들어왔다. 잠시 넋을 놓고 풍경에 취한 사이 이곳은 바람이 시원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된다는 사장님의 설명과 함께 해산물로 이뤄진 밑반찬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사진에 진심인 친구들 덕에 음식촬영 동안 맥주로 목을 축이며 몸의 긴장을 이완시켰다. 나는 어느새 좋은 날엔 늘 웃음이 헤픈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배가 많이 들어가 기분 좋은 단 맛이 가득했던 물회로 배를 채운 우리는 포만감 하나로 무한 긍정론자가 될 수 있었다. 물놀이에 맞게 날도 무더워 다음 일정인 스노클링에 대한 기대 또한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이번 여행은 가는 곳마다 성공할 것이라는 섣부른 낙관을 누군가가 엿듣기라도 한 걸까. 우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릴 이동했지만, 지난 여행마다 웃픈 상황이 반복되었던 과거를 까맣게 잊은 채 다가올 변수들을 예감할 수 없었다.       



   


불국사하면 떠오르는 사진 명당자리. 2일 차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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