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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03.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4

오토바이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주변인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온도차는 있으나 위험이란 키워드는 늘 언급된다. 사고의 위험성엔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크는 매혹적이라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할리 데이비슨, 혼다, 스즈키, 가와사키, 듀카티 등 수많은 브랜드들은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을 꾸준히 양산하고 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중 위황제 조조는 인재영입에 욕심이 많던 인물이었다. 특히 유비 휘하에 있는 관우를 흠모하던 그의 마음을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누차 드러내는데, 의형제 유비밖에 몰랐던 형 바보 관우는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며 조조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데 그 콧대 높고 지조 있던 관우가 조조에게 잠시 몸을 의탁했던 기간이 있었다. 연의에선 전쟁 중 실종된 유비의 생사를 알 수 없던 상황이라 조조의 플러팅이 효과를 본 것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관우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타는 말이었다. 삼국지를 안 읽은 사람들도 한번 정도는 들어봤을 그 이름 유명한 적토마. 여포부터 시작된 영웅들의 유별난 말 사랑은 관우의 일화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한때 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하였어도 전설의 명마안겨줄 수 있는 조조의 배포에 대추빛 얼굴의 명장은 기쁨 숨기질 못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서쪽으로 지도를 따라 60km 정도를 이동해 보자. 그곳에 가면 40미터 높이의 거대한 칭기즈칸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는 거대한 말을 타고 자신의 영토를 바라보며 세계를 떨게 만들었던 정복자의 위용을 여전히 내고 있다. 흠.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1)>도 한번 떠올려보자.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가이자 나폴레옹의 전속 화가였던 그는 나폴레옹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기록을 보면 나폴레옹은 당나귀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하지만 자크 루이 다비드는 멋진 갈기의 사나운 말을 타고 이탈리아 정복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쯤 되면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말은 강인한 정복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더는 말이 이동수단이 아닌 현대에서도 그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빠르고 숙련도가 요구되며,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 말과 오토바이크는 매우 흡사하다.


정우성이 청춘과 방황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은 오토바이크를 타던 이미지가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컸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레니게이드, 이지라이더, 최민수 등 남성미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캐릭터들까지 예로 들려면 한 권으로도 족하다. 앞서 변죽만 울린 이유가 실은 이번 여행에서 중요시했던 액티비티 즉, 오토바이크였기 때문이다. 125cc 이하의 작은 스쿠터를 타고 경주 시내와 유적지를 여행하는 것. 평소엔 작은 스쿠터일지라도 오토바이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엄두조차 낸 적이 없다. 또한 자전거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는 나는 오토바이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경주를 여행하는데 오토바이크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이라 말하고 싶었다. 친구들을 설득해 처음 스쿠터를 즐겼던 제주 여행을 기억한다. 차량의 이동이 적은 해안로를 따라 바람을 마주하며 속도를 만끽하는 자유로움은 오토바이크에 부정적이었던 친구들 조차 그 매력에 반하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은 그 총각시절 제주 여행의 연장선에 있었다. 내가 스쿠터로 경험했던 경주의 매력을 공유하고 싶어 다소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 여행을 즐기던 그들의 모습에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표정이 기억나는 것을 보니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간밤에 잠을 자긴 했던 걸까. 고문당한 듯 안 쑤시는 곳이 없는 삭신을 풀어주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대청마루에서 가벼운 운동을 시작했다. 눈 뜨자마자 시작하는 스트레칭은 굳어있는 근육에 피를 돌게 하고 활력을 준다.


소리로 가득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느리게 진행하는 스트레칭에 눈물이 날 것 같은 벅참을 느낀다. '그래, 나는 이런 것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지.'라는 새삼스런 혼잣말을 삼키며 운동 강도를 높여갔다. 밤새 끈적했던 몸은 운동으로 흘린 땀으로 덮여 샤워하기 딱 좋은 상태가 되었는데, 언제 일어난 건지 친구들은 주섬주섬 이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순서가 밀리지 않게 서둘러 샤워를 마친 후 냉장고 속 시원한 커피를 꺼내 마셨다. 마루에 기대앉아 바라보는 양동마을의 풍경은 어젯밤과 달랐다. 자신의 언덕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한옥들은 아침이 되자 정겨운 소음과 무언갈 태우는 연기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아침식사로 시청 근처의 한 작은 추어탕 집에서 해장을 했다. 추어탕을 된장베이스의 육수로 맑게 끓여내는 집이라 이 또한 낯설었는데, 미꾸라지를 곱게 갈았는지 건더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의 맛과 흡사하니 추어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즐기기 괜찮겠다 싶었다.


청소년 같은 허기짐에 미꾸라지와 공깃밥 라지 사이즈로 허겁지겁 배를 채운 우린 경주 고속터미널 근처의 한 대여점으로 갔다. 잠시 둘러보곤 모양이 예쁜 스쿠터 세 대를 대여했다. 친절한 사장님께 경주 여행지도 한 장을 받고는 오늘의 코스를 점검할 장소로 스쿠터를 몰고 이동했다. 지금의 핫한 경주 느낌을 만들어준 일등 공신, 한옥 스타벅스로 스쿠터 세 대는 시속 30km의 쏘닉 붐을 일으키며 점처럼 사라졌다.


-쏘닉 붐(sonic boom)은 보통 항공기의 초음속 비행에서 발생하는 폭발음을 의미함.




화남도. 2023.08. J.K.H.



(5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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