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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15.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6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Antonio Gaudi-





내비게이션을 보니 첨성대에서 불국사까지의 거리가 제법 된다. 15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우리는 몇 가지 수칙을 정한 후 길을 나섰다. 첫째로는 2차선 바깥에 붙어 이동을 하며, 두 번째는 경험이 비교적 많은 내가 선두, 초심자가 중간, 그다음 경험자가 후미에 위치해 일렬로 이동하는 것이다. 신호를 지키는 것과 과속을 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선두의 수신호에 맞춰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차량의 이동이 적은 경주에선 이 정도의 기본수칙만 지켜도 놀랄 만큼 안전한 스쿠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신호를 대기하며 보게 되는 한적한 풍경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잠시, 가슴팍과 목 뒤로 흘러내리는 땀에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이럴 때의 해결책은 그저 신나게 달리는 것뿐. 불국사로 이어진 숲길, 그늘이 길게 늘어진 오르막 길을 따라 과감하게 속도를 높여본다. 흐르던 땀은 맞바람에 밀려 날아가고 바보 같은 웃음이 입가를 떠나질 않는다.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거울 속을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틀에 박혀 살다가 잠시 밖으로 뛰쳐나온 우린 거울 속 세상이 좁아 아이처럼 발을 구른다. 마치 여행의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 것처럼.         



불국사의 입장료가 이전 방문과는 다르게 무료로 전환되었다. 주차비가 남아있긴 하지만 큰 부담은 안되니 환영할 만한 결정으로 보인다. 얼마 없는 그늘진 자리는 자동차들이 미리 선점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주차장 한복판에 스쿠터를 주차했다. 걸음을 옮겨 입구를 통해 숲길로 들어서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데 비가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비에 외국인 관광객들도, 라마교 승려들도 허둥지둥 비를 피할 곳을 찾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흙바닥에서 튕겨 오르는 물방울들이 딱 신경 쓰일 만큼만 신발을 더럽히자 우리도 종각 끄트머리로 가 잠시 비를 피했다. 멀뚱히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데 비의 경계가 생기길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은 비가 떨어지고 있는데 몇 발자국 앞의 불국사엔 해가 비치고 있으니 절묘하게 신라 천년고찰의 의미가 와닿는다.


 '아직 차안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나는 피안의 세계 불국정토를 찾으러 온 것이구나.' 


그런 의미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인 무지한 중생 셋은 불국사의 사진 명소 청운교(무지개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추억하는 이곳에 우리의 이야기도 더해보며 오늘의 목적지인 불국사 경내로 향했다.  

  

불국사는 원래 석단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의미가 나눠지게 만들어졌다. 간략하게 설명해 보면 불국사는 평지에서 다리(연화, 칠보교 또는 백운, 청운교)를 건너가야 하는 구조로 1층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범부의 세계, 2층인 불국사는 부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하다.


불국사는 751년(경덕왕 제위 10년)에 신라의 재상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현세의 부모님을 위해 대규모의 공사를 가능케 하였다 생각하니 그의 효성과 위세가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득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 한이 사랑하던 아내의 무덤으로 타지마할을 만들었다는 것이 떠올랐으나 이 둘의 연결고리는 약하고 그 끝은 너무 달랐다는 사실에 생각을 더는 잇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애틋한 추상을 땅 위에 견고한 실체로 세우고 싶던 그 마음이 세계 건축사와 일국의 역사가 될 정도로 큰일이 되었다는 것은 불국사를 관람하는 동안 내 사유의 끝자락에 붙어 다녔다.   

       

불국사 경내로 들어가려면 홍예(무지개다리)를 사이에 둔 백운교와 청운교를 건너 자하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둘을 합쳐 총 33개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속세의 욕심이 정화된다고 하는데 자하문을 통과해서야 정화는 완성이 된다. 자주 빛의 붉은 안개가 서린 이 문을 통과하는 자에겐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니 그 의미가 참으로 깊어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로 인해 현재 그 체험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측면에 위치한 언덕을 통해 불국사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다보탑이 서 있다. 그 뒤론 석가탑이 보인다. 6년 전 방문했을 때의 석가탑은 커다란 천막으로 가려진 채 수리 중에 있었는데 이번엔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어 반가웠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 뒤편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등이 있는데 늘 그렇듯 나는 대웅전과 그 앞의 두 탑 앞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말했다. 하지만 불국사엔 너무나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욕심에 눌려 조금씩이라도 말을 꺼냈다간 그 엄청난 양에 시시콜콜한 여행기의 장르는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도 있는 해설은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양서들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애정하는 정도만 쓰고자 한다. 행여 찬란한 문화유산의 차별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역정 내지 마시길 바란다. 예술은 취향이라는 말을 방패막이로 시시콜콜한 여행기는 얇고 길게 이어진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사찰의 중심이 된다. 그 의미는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커다란 영웅大雄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잠시 대웅전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정면에 커다란 금동 불상이 보인다. 석가모니불상이다. 좌우에는 석가모니를 보좌하는 협시보살들이 있지만 크기는 절반이 채 안된다. 또 그 옆엔 부처의 제자들이 서 있지만 크기는 더 작다. 가상의 선을 긋는다면 딱 완만한 삼각형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배치다.


고대 이집트 벽화나 동양의 괘불掛佛(부처를 그린 족자)을 보면 신분의 차이를 크기로 구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중세시대의 회화에서도 보이는 현상인데, 르네상스 시대의 선 원근법이 발명되기 전에는 관념적인 원근법이 널리 활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종교적인 인간은 아닐지라도 태생적으로 작고 나약한 우리는 커다란 존재에 대해 본능적인 경외심을 갖게 된다. 뾰족한 첨탑으로 가득한 고딕 양식의 교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더 수월하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건물은 천국에 가까워지려는 듯 높고 크게 지어졌으며 실내의 천장 역시 매우 높게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신자들은 공간에 압도되어 자신이 작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듯 신은 거대하지 않던가. 더하여 스테인드 글라스로 쏟아지는 영롱한 빛은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듯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찰을 보게 되면 다른 나라의 불교사원들과는 달리 주변의 경관을 해칠 정도로 눈에 띄게 만들진 않았다.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닌 능선의 흐름을 닮은 듯 유려하게 자리 잡은 사찰이 대다수이다. 왜일까. 하나의 가르침에서 시작했지만 불교를 받아들인 국가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닮은 듯 다른 꽃을 피웠다.     

   



(7부로 이어집니다)



2023 천마도. 2023.09. J.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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