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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26.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8



이제는 제법 스쿠터 운전에 능숙함을 보이는 친구들 덕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워낙 오랜만에 타보는 오토바이크라 불국사로 향하기 전엔 약간의 긴장감이 보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확인차 선두인 내가 속도에 변화를 줘봐도 간격이 벌어지질 않았다. 역시나 몸으로 익혔던 것들은 어딜 가지 않는다.


지난 방문 때는 보문단지 근처에 황룡사 9층 목탑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때는 골조만 잔뜩 올리고 있어 준공 후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언제 공사를 마친 건지 여행 첫날 이동하는 길 저 멀리에 홀로 키가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빼꼼 내민 얼굴이 반가워 방문 계획을 잡고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내 기대와는 다른 지점들이 많았다. 우선 이 건축물은 목탑이 아니었으며 황룡사를 복원한 사찰 안에 만든 것도, 관광을 위한 건물도 아니었다. 건물 곳곳에 붙여놓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완강한 접근 거절 메시지로 알 수 있었던 건 이곳은 사유지라는 것뿐이었다.


종교단체 혹은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만든 건물.


확인 차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니 이곳은 황룡원이란 곳으로 숙박 및 명상 또는 기타 활동을 위한 건물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건립 목적이나 주체 등 다른 세부사항은 알 수 없었다.


내부를 볼 수 없었기에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감상은 수박 겉핥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으나 눈에 띄었던 요소는 잠시 언급하며 지나가도 좋을 듯하다.


보통 조형물을 평가할 때는 형태감, 재질감, 색감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다. 황룡원의 크기는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놀랍다. 80미터에 달하는 높이는 신라시대에 과연 이 정도 크기의 건축물을 만들 기술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황룡원은 여러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복원한 것이라고 하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역사로만 남은 건축물의 놀라운 재현임은 틀림이 없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황룡사 9층 목탑은 인접한 아홉 국가를 탑의 힘으로 눌러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미 국운이 끝난 후라 그랬는지 목탑은 고려 때 원나라의 침략으로 황룡사와 함께 전소되었다. 시작과 끝의 이유가 결국 시달림 때문이었던 목탑은 아픈 기록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황룡원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색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층마다 금색의 띠를 두른듯한 화려한 외양은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데, 목탑을 닮고 싶은 건물의 외관과 금색의 조합에는 교토에 있는 금각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는 신라가 황금의 나라였기에 찬란한 금빛을 부각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름다움만 생각한다면 넘치도록 아름다운 건물이지만, 감상의 무게를 고증에 둔다면 과거 황룡사 9층 목탑이 이 정도로 화려한 금치장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기록이 실물로 구현된 황룡원을 바라보며 이 건축물이 내 상상에 가까웠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무의미한 투정일까. 그런데 경주시는 그런 잡다한 생각조차 미리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을 바라보니 멀지 않은 거리에 그 대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랜드마크인 경주타워는 황룡사 9층 목탑을 현대적인 아이디어로 재구성한 건물로 유명하다. 타워의 중심을 실재했던 목탑의 모양과 크기로 음각해 놓았는데 현장에서 보면 이 프로젝트의 상상력과 담대한 실행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건물은 원래 용적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중앙을 과감하게 뚫어놓았으니 말이다.


때로는 보여주는 것보다 보여주지 않고 이야길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주타워가 말해준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거대한 빈 공간에서 저마다의 목탑을 보았을 테니 보이는 실체는 하나여도 느껴지는 것은 무한대인 건축물이 만들어진 이다. 생각의 끝에 감탄사가 나온 일개 관광객은 그저 속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더는 살을 붙이진 못했다.







짧은 머무름 후 스쿠터의 핸들을 경주 최부자댁 방향으로 돌렸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엔 배가 덜 고프고 거르고 돌아다니기엔 때를 놓칠 것만 같은 애매한 시간이라 의견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가벼운 먹거리로 해결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 추억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교리김밥 정도는 먹어봤어야 경주에 대해 말할 거리가 생긴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다. 이심전심.


기수의 들뜬 기분도 모른 채 얌전하기만 한 스쿠터가 아쉬워 입으로 굉음을 더하는 셋은 경주 교리김밥 1호점을 향해 움직였다. 그냥 김밥 한 줄이 아닌 추억 한 줄을 더해보자는 마음이 기다란 선을 그리며 바퀴를 따라다녔다.


(9부로 이어집니다)

    




성덕대왕 신종. <wave> 2023. 09. J.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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