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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Oct 02.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9

유명해진 음식점 얘길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도 듣는다.


 "그게 뭐라고 줄까지 서서 먹는지 모르겠어."






지역마다 유명한 맛집들이 있다. 다행인 건지 내가 사는 동네에도 줄 서서 먹는 맛집들이 제법 있다. sns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어떨 때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낯선 음식점마저도 인플루언서의 홍보 한 번에 줄을 서는 맛집으로 변하곤 하니 그 따라가기 힘든 빠른 변화가 때론 무섭기도 하다.


삼십 대 후반까지는 줄까지 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을 꺼려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음식들엔 더더욱 관심을 안 뒀다. 성향 탓일 텐데 마카롱, 대만 카스텔라같이 유행한다는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살았다. 뭐든 줏대 없이 따라가는 것이 싫었던 나는 짧은 주기로 들썩이는 유행에는 신뢰를 주질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바뀐 건지 이제는 그런 것들에 호기심이 생긴다. 맛이 있건 없건, 입에 맞건 안 맞건 간에 경험하는 일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 경험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행복해졌다. 이런 작은 거리들이 쌓여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고의 뾰족한 부분들이 제법 두루뭉술하게 마모됐을 무렵부터 나는 전주에 가면 풍년제과를 가고 대전에 가면 성심당을 들리며 인천에는 공화춘, 경주에선 교리김밥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경주 교리김밥은 계란 지단을 담뿍 넣은 김밥으로 유명한 집이다. 이 김밥집의 유래가 참 재미있는데 원래는 요정 근처에서 야식을 팔던 구멍가게였다고 한다. 늦은 시간 요정 아가씨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작은 가게가 이제는 김밥 속 담백한 계란의 풍성함과 포슬포슬한 식감으로 입소문을 타 4호점까지 오픈한 유명 맛집이  것이다.


이전 방문 때는 작은 가게 앞 골목에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먹어볼 수 있었다. 더운데 고생해서 먹었던 귀한 음식이란 이미지가 남아 있었기에 다시 찾은 이번에도 친구들과 함께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따라 막상 도착해 보니 내 기억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분명 교리김밥 본점을 찾아왔는데 번듯한 현대식 기와집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장소를 잘못 찾았나 당황스러웠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본점이 맞았다. 패널에 커다랗게 쓰인 본점이란 글씨로 알 수 있었다. 짐작건대 마지막 방문이 칠 년도 넘은 그 사이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점포를 깨끗하고 넓은 공간으로 재건축한 것 같았다.


이런 변화는 다른 유명 맛집에서도 종종 마주치는 상황이기도 한데, 나는 이렇게 성공한 가게들이 가게를 확 바꿔버리는 일에 아쉬움을 느낀다. 이곳을 예로 들자면 본점의 그 허름하면서도 가게 곳곳에 묻은 오래된 느낌이 교리 김밥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믿는데 갑자기 너무 세련된 가게가 돼버렸으니 아쉬운 것이다.


여러 사정이 있을 테지만 요즘은 건물의 외관을 잘 살리면서도 내부 리모델링만 하는 방식도 유행하고 있으니 가게의 역사를 좀 더 배려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가끔 하는 이야기지만 가게의 음식은 맛이 전부가 아니다. 장소, 분위기, 심지어 소음의 정도(음악, 대화 소리의 거리)까지도 음식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음식 하나 먹는데 너무 까탈시럽다고? 아니다, 가만히 각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말은 이리 했어도 가게에 지분 하나 없는 나는 금방 태세를 바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줄을 안 서도 된다는 편리성에 만족하기로 했다.(역시 문명 최고)

실내에서 앉아 숨도 돌릴 겸 가볍게 먹고 가려했는데 1인 1 주문을 해야 실내 취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몰리는 맛집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혹시 몰라 저렴한 음식을 찾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그사이에 음식 가격이 참 많이도 올랐다.


아직 배가 덜 고픈 우린 고민 없이 1인분만 포장하기로 했다. 어차피 체험을 원한 것이기에 김밥을 받고는 미리 눈여겨본 근처의 정자로 이동해 자릴 잡았다. 정자는 한동안 사용이 없었는지 먼지가 가득했다. 앉을 곳을 대충 닦고 지저분한 부분을 피해 다양한 자세로 걸터앉아 김밥을 나눠 먹는데 묘하게 운치가 있었다. 전세 낸 것처럼 독점한 정자 안에서 푸른 하늘, 작은 논을 바라보며 김밥을 먹으니 기분만큼은 호사스러웠다고 할까.


다 먹고 난 후 김밥의 특별한 맛에 감탄한 남자들의 찬사는 이랬다.


"내가 이 집 맛있다고 했지?"


"이 집 맛있네."


"이 집은 계란이 맛있네."



할 줄 아는 표현의 최대치를 발휘한 남자 셋은 다음 장소인 경주 최 씨 고택을 향해 엑셀을 풀로 당겼다.


      

   




경주 최 씨는 경북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신라말기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경주 최 씨로 유명한데, 사실 이보다 더 유명한 것은 이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최 씨 가문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양반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른 지도층의 모습을 보였기에 현재의 눈으로도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육훈(六訓)

여섯 가지 행동지침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10부로 이어집니다)



만약, 지금 우리에게 만파식적이 있었더라면.                         <WAVE 2> 2023. 10. J.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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