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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08.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5

관광지를 다녀보면 지자체 홍보와는 다르게 콘탠츠는 부실하고,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물만 세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인프라 구축에만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수준을 재차 확인하게 될 때면 씁쓸하기도 하다. 음식만 맛있다면 폭염에도 목욕탕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먹는 것이 관광객인데, 그 단순한 이치를 행정으로 풀어내는 것이 왜 그리 힘든 일인지 외부인의 눈으론 알 수 없다.


여행지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곳만이 갖고 있는, 그곳으로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반응한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한 곡이 젊은 관광객들을 여수로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관광지로 주목받던 곳이라도 스토리가 생기면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 아닐까. 하지만 저절로 찾아온 좋은 기회를 바가지 상술로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곳으로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경주 스타벅스 대릉원점은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방문하는 것을 추천할 만하다. 너무나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한옥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를 얹어 우리의 전통과 스타벅스의 정체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이다. (이디야, 엔젤 인 어스, 투썸 플레이스 등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들도 한옥 커피점을 운영하고 있으나 첨성대와 오릉을 마주한 곳에 자리한 스타벅스를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건물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힙한 느낌이 물씬 나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들어가며 잠시 간판을 바라보니 세이렌의 얼굴과 신라의 수막새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얼음 가득한 세 잔의 음료를 받아오곤 평상에 앉았다. 경주 스타벅스는 실내에도 한옥 콘셉트를 더해 좌식 테이블도 마련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아이디어반응한다.


경주가 가진 최고의 힘은 역시 잘 보존된 신라 유적들이다. 도시 전체가 볼거리니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무턱대고 다니면 3일로도 부족한 곳이 경주다. 테이블 위로 지도를 펼치니 경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루 동안 다닐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 보니 동선이 제법 단순해진다. 첨성대, 불국사, 최근 복원한 황룡사지 9층 목탑, 경주 최 씨 고택, 국립 경주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결정한 우린 오늘 여행의 시발점이 될 첨성대로 이동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따라 첨성대의 코앞까지 이동해 스쿠터를 주차했다. 이참에 꺼내보는 오토바이크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주차의 편리성이다. 관광지의 특성상 아무래도 주차공간이 협소한 곳이 많은데, 오토바이크는 좁은 공간에도 주차하기 쉽다. 그 수월함에 길들여져 승용차가 싫어질까 걱정일 정도로 편리하다.


잔디밭을 좌우로 둔 보도블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200미터 정도 앞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첨성대가 보인다. 주변에 의지할 건물 하나 없이 홀로 서있어 올 때마다 고독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몇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만 보이는 평원은 고요했다. 걸음을 떼는 것도 힘든 폭염에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서둘러 자리를 뜨자 우린 잠시나마 첨성대를 독점할 수 있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알려져 있다. 정방형의 기단부와 술병 모양의 원통부, 그리고 정井 자 모양의 정상부를 합쳐 총 9.51미터 높이의 석조 건물이다. 고대에는 하늘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하늘의 자손인 왕이 부모의 뜻을 알 수 없다면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이런 관측대가 생긴 것이리라.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상식으론 아직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지금부터는 그저 상상하는 재미로만 의심 많은 미술교사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우선 첨성대의 위치에 주목했다. 하늘을 관측하려면 최대한 하늘과 가까운 위치에 만드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일 텐데 신라의 첨성대는 산은커녕 평지에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높게라도 축조되었을까? 당시의 기술력을 생각해 보아도 그다지 크다고 보기 어려운 높이 9.51미터이다. 숫자를 뒤집어 15.9미터라도 됐다면 이런 의문은 생기질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론 활용성에 대한 의문이다. 서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없는 첨성대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별을 관측하게 만들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몸통 중앙에 있는 사각형 구멍까지 사다리를 놓고 들어가 꼭대기로 올라가 보니 제법 편했다는 실증을 토대로 한 학자들의 기록이 있었다. 정말? 설마 그럴 리가.


술병모양의 아름다운 외형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심미성과 화강석을 반듯하게 다듬을 수 있는 높은 기술을 보유했던 신라가 이렇게 생각 없이 관측대를 만들었다니 믿기 어렵다. 차라리 외부 또는 내부에 건물을 감싸듯 둥글게 올라가는 계단을 만드는 것이 더 상식에 부합된다. 그렇다면 첨성대가 무엇이라 생각하길래 이리 의심만 늘어놓는다는 말인가.


첨성대는 워낙 신비로운 건축물이라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내 생각과 일치했던 것은 첨성대의 형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꼭대기에 위치한 정井자 모양의 천장. 오래전 본 글이라 출처를 밝힐 수 없어 아쉬우나 요지는 이러했다. 아무래도 첨성대는 종교적 의미의 건축물로 보아야 하며, 가장 큰 의미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물 같은 통로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것. 예술인의 시선으로 형태와 활용성에 집중해 보면 이보다 납득이 편한 가설은 없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 한 명이 역사를 가르친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그를 쳐다봤지만, 늘 그렇듯 별다른 설명 없이 덥다만 연발하며 나약함을 뽐내고 있었다. 나 몰래 뉴라이트 역사관을 장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이 또 다른 친구 하나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 친구는 직업이 사진작가라 본업에 충실할 뿐이고, 생각 말고는 할 게 없는 난 멀뚱히 서서 상상만 이어갔다.


이렇게 미술교사, 역사교사, 사진작가 셋은 전문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만의 여행기를 마저 쓰려 스쿠터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곤 더위로부터 멀리 도망치려는 듯 속력을 높였다. 잠시 후 주변이 선으로 보이는 시속 31킬로미터의 광속으로 스쿠터 세 대는 엔터프라이즈호 같은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SF시리즈 스타트랙의 함선이름이다.

      


2023년 7월, 첨성대.


(6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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