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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ug 29.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3

지역 거주민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소박한 가게로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우리가 경주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인분이 식당을 예약해 자릴 마련해 줬다. 타지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자 신이 난 서로는 오늘의 해프닝을 서둘러 늘어놓기 바빴다. 남자 넷이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수다는 아직 밑반찬이 채워지지 않은 테이블을 웃음 먼저 채워나갔다.


가볍게 반주를 시작하며 이 식당은 아귀찜을 양념 없이 수육처럼 내놓는데, 특유의 담백함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는 설명을 들었다. 조금 낯선 방식이지만 그 지역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라면 여행자는 환영할 수밖에 없다. 까탈스럽진 않아도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중요시한다. 내게 여행지의 식당이란 일정의 쉼표와 마침표를 찍는 공간이다. 맛있는 음식은 해시태그처럼 추억에 달라붙어있다고 여긴다. 도착 전 충분히 알아보고 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놀이로 고단했던 몸에 포슬한 아귀를 풀어주니 녀석들의 놀이터인 내 위장 역시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단순함에 반해 점점 건배를 늘려가던 우리는, 맛집 앞처럼 줄을 선 빈병들로 테이블이 비좁아져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보니 제법 어둠이 짙어져 있었다. 아직 숙소를 보지 못했던 우리는 마트에서 간단한 안주거리와 주류를 사서 숙소가 있는 양동마을로 향했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변은 암막을 두른 듯 불빛을 찾기 어려웠다.   


양동마을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한옥마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반 집성촌이다. 우리의 주된 활동장소인 경주시보다 포항이 가까운 곳이라 장소의 이점은 없지만 모두가 처음 방문하는 곳이니 숙소로는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친구가 괜찮은 전통한옥을 예약했다길래 생각을 깊게 하진 않았다. 장소가 어디건 간에 에어컨 하나면 만족하는 나는 친구의 빠른 예약에 감사할 뿐이었다.   


모두가 길치에 방향치인 우릴 위해 한옥의 관리인 어르신이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전조등에 비친 그분의 모습은 미동조차 없어 마치 오랫동안 마을을 지킨 장승처럼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차 안에서 그분의 길안내를 듣는데 근처에 보이는 그럴싸한 한옥들은 죄다 지나쳐 갔다. 밤길에 속도를 낼 수 없던 자동차는 까만 안개 같은 어둠을 뚫고 비포장된 소로를 굽이굽이 올라만 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언덕의 끝까지 올라가서야 달도 뜨지 않은 밤 아담한 마당을 품에 안은 한옥의 희미한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얼른 차에서 내려 장지문을 열고 실내를 살펴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한옥이 아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분이 살고 계신 한옥 가정집이었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외할머니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한지 장판에 모기망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옥빛의 선풍기는 금성이라는 기업로고가 무색하게 버젓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혔다(역시 가전은 LG인가). 게다가 화장실의 입구는 양반의 마을답게 투숙객을 겸손하게 만들려는 의도인지 내 키의 절반도 안 되는 높이로 만들어져 안 그래도 예민해진 내 신경을 자극했다.  


순간 예약을 담당한 친구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배려심이 강해 번거로운 일들은 먼저 나서서 해결하는 성품을 가진 친구가 자신이 예약한 숙소가 이런 컨디션이니 꽤나 미안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서 짜증을 내면 우린 친구가 아닌 것이다. 둔하기로 소문난 친구 하나와 까칠했던 나는 이만하면 한옥도 이쁘고 마루도 널찍하니 아침에는 훨씬 더 좋겠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마당에 서서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시는 관리인 어르신을 보내드리곤 빠르게 짐을 풀었다.                       


별채에 기거하신다는 주인 할머니는 창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존재의 여부만 알 수 있을 뿐 인기척이 없었다. 숙소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두 채의 독립된 공간이었지만, 혹여 우리가 만든 소음으로 할머니의 단잠을 깨울까 조용히 짐을 풀며 씻을 준비를 했다. 졸졸대는 수압과 낮은 천장의 화장실에선 무릎을 꿇고 씻을 수밖에 없어 떠나온 문명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씻은 후 밖으로 나와 고단했던 하루 마감용 과자 몇 봉지와 맥주를 꺼냈다.


모두가 편한 복장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한밤에도 더위는 가시질 않고 오히려 습도는 치솟았다. 꺼내놓은 과자들은 이십 분도 채 안돼 육즙 같은 습기를 머금었다. 물컹한 과자. 울 첫째가 아기 비스킷을 입에 넣고 빨다가 갑자기 내 입으로 집어넣었을 때의 식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과자. 허나 이 과자는 내 아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주전부리로써의 기능은 일찌감치 잃어버려 우리는 녀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금세 미지근해진 술과 습기 먹은 안주에 흥을 잃어버린 우린 갑자기 집안으로 날아들어온 장수풍뎅이 한쌍만 신기하게 바라보다 자릴 파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 잠자리에 들려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끔찍했던 습도에 신생아처럼 밤새 뒤척이다 울며 선잠을 잤다. 수면이라도 충분해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유적지 답사를 좋은 몸 상태로 즐길 수 있을 텐데, 눈치 없이 새벽부터 지저귀는 새들은 또 얼마나 우리의 아침을 재촉하던지.





해 떴다. 일어나~


(4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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