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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Aug 24. 2023

우리는 경주하듯이

시시콜콜한 경주기행 2

경주가 고향인 지인 한 분이 여행 전 그곳의 먹거리에 대한 이런저런 팁을 주다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있었다. 아직 동해의 물이 차가워 몸 좀 담그려면 한참은 더 걸릴 것이라는 말. 평소 자세한 설명은 안 하는 경상도 사나이의 말이라 크게 귀담아듣진 않았다. 더구나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7월의 불볕더위 앞에 '얼음 물인들 못 들어가겠는가'라며 오히려 반색했다. 물이 차갑다는 말은 더위를 많이 타는 겐 희소식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장소가 협소해 주차가 어렵다던 송대말 등대 근처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그런데 입구까지 걸어가는 도중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떠들썩해야 할 장소인데 이상할 정도로 통행하는 사람이 적었다. 눈에 보이는 몇 명조차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더하여 더위와 어울리지 않는 강한 바람에 상모 돌리듯 회전하는 내 머리카락들은 여행 전 들었던 지인분의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한참은 더 걸릴 거야, 한참은 더 걸릴 거야~ '



등대 아래로 보이는 스노클링 장소는 미리 검색해 본 이미지처럼 아름다웠다. 암초 근처에 격자 모양인위적인 벽을 만들어 쉽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으니, 몬드리안이 생전에 봤다면 매우 좋아했을 것이다. 다만 빠른 속도로 밀려드는 파도가 수면에 숭어비늘 같은 파문을 일으켜 상황파악을 가능케 했다. 물가에 서있는 사람들은 물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안전한 곳에서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추위를 이기지 못해 수시로 바위 위를 들락거렸다.


 해가 닿지 않는 바위 언덕을 곁에 둔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니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모골송연毛骨悚然. 셋이서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스노클링을 강행했다간 공양미도 받지 못한 채 용궁까지 끌려들어 갈 것이 뻔하다는 허망한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일정을 멈추긴 아쉬운 마음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아라해변으로 이동해 봤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해는 뜨겁게 백사장만 달굴 뿐 바닷물의 온도엔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니 백사장에 앉아있는 소수의 관광객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물건에도 감정이 있다면 여행짐 절반을 차지했던 수영도구들이 외려 우리보다 민망했을 것이다. 래시가드, 스노클링장비, 아쿠아슈즈, 대형 수건 등 여름에만 환영받는 녀석들은 트렁크 속에서 우리에게 애달픈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바다 깊이가 7 미터건 얼음물이건 뭐건 더는 물러서기 싫었던 우리는 호기롭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바로 나왔다. 그리고 포기를 못하고 다시 들어갔다. 그리곤 바로 나왔다....



예전 유치하게 여겼던  예능 프로가 생각났다. 뭘 그리 벌칙으로 입수를 자꾸 시키는지. 이런 게 전파 낭비 아니냐며 인기 있던 국민 예능을 그때는 외면했었다. 많이 미안하다. 우린 돈과 시간과 얼마 없는 체면까지 낭비했다. 해변가에 편히 앉아 즐기는 바다멍도 좋지만 기회비용이 아까운 나는 괜히 친구들을 꼬드겨 벌칙 입수게임을 제안했다. 널려있는 조약돌로 표지판을 못 맞추는 마지막 사람이 입수하는 것으로 말이다.


정신연령이 아직 이십 대인 아저씨 셋은 그렇게 인적이 드문 경주의 한 해변가에서 겉으론 꺄르륵대고 속으론 눈물을 삼켰다. 이젠 뭔가 어설펐던 여행 첫날을 잘 마무리할 방법은 맛있는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예약해 둔 전통 한옥에서 푹 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신은 늘 웃는 얼굴로 우릴 시험했다.


테킬라 선라이즈를 닮았던 노을은 점차 검푸른 블랙 러시안 빛으로 변해갔다. 뻔한 클리셰를 대놓고 예고했는데 나는 왜 눈치채질 못했던가.      


  


석가탑이란 말보다 무영탑이란 명칭이 늘 더 마음에 들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 이름. 백제와 신라를 사이에 둔 애절한 사랑이야기.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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