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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Sep 11. 2024

사랑의 불시착

미술교사의 제주도 여행에세이 2 

서울 사람에게도 제주는 가까운 섬이다. 김포공항 기준으로 오십 분이면 비행기로 도착할 수 있어 이동하는 번거로움만 감수한다면 금세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제주다. 저가항공도 많아진 요즘, 날짜만 잘 맞춘다면 KTX  비용과 비슷한 금액으로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육지를 벗어나 색다른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론 제주만 한 곳이 없기에 여전히 이 섬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특유의 설렘이 느껴졌다. 복장부터 표정까지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취해 나도 금방 들뜰 수 있었다. 친구와 나 역시 누가 봐주지 않아도 한껏 꾸미고 간 차림새라 마음만큼은 포토존 앞에 선 연예인이었다. 꾸밀수록 촌스러운 서로의 복장에 감탄하는 사이 탑승 시간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기나긴 대기 행렬을 두 번 먼저 보내고, 세 번째 순서에 맞춰 탑승하곤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붙였다.


만성 피로에 콩나물처럼 고갤 숙이고 선잠을 잤지만 그 와중에도 무언가 이상함이 감지됐다. 잠시 후 제주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 착륙할 때 특유의 거친 진동이 느껴지질 않았던 것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창밖을 보니 구름 속이었다. 어리둥절한 내게 친구는 제주 공항 기상 문제로 비행기가 회항했다며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날이 화창해 보여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다시 눈을 붙였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시 기내 방송에선 제주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또다시 눈을 뜨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날은 밝아 기상 이변이 있긴 했었나라는 의심이 채 거둬지기도 전, 비행기는 활주로를 스치듯 지나쳐 다시 하늘 높이 날았다. 돌풍으로 인해 착륙을 못했다는 기장의 사과 방송에 사람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가끔 방송에서 보던 활주로 착륙 사고가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비행기 사고는 남의 일 같았기에 세 번째 착륙도 실패하면 웃기긴 하겠다며 농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진리를 여러 차례 겪어봤음에도 깃털같이 가벼운 입을 가진 우린, 설마 했던 세 번째 착륙 실패를 경험했다. 이어지는 회항에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기내 승객들의 술렁임은 파도치듯 여러 곳에서 느껴졌다. 기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승무원들은 애먼 머리 위 짐칸만 만져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어수선함이 절정에 이르자 연료 보충을 위해 무안 공항에서 착륙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와 동시 콜라의 탄산이 빠지듯 새어 나온 승객들의 탄식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삼십 분의 주유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자리에 일어나 굳은 몸을 풀어주거나 화장실로 갔다. 뒤숭숭했던 시간이 지나고 기내의 분위기까지 안정되고 나서야 비행기는 출발할 수 있었다. 또다시 삼십 분을 더하여 네 번째 시도만에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배를 붙일 수 있었다. 착륙은 거칠었지만 무사했다. 안도한 내 귀엔 NASA 직원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은 허공으로 서류를 날리는 대신 도착과 동시 자리에서 일어나 짐칸에서 개인짐을 빼냈다. 우린 잠시 자리에 앉아 여행의 신께 감사드렸다.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 반이었다. 김포에서 아홉 시 이십오 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네 시간이 지나서야 제주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여름 파리에서 올림픽이 있었다. 나는 이 착지의 점수를 올림픽처럼 매긴다면 4점을 주고 싶었다. 딱 4점. 허비된 시간을 보상받으려면 빠르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땅에 발을 붙이자 우린 잊고 있던 공복이 생각났다. 서둘러 렌터카를 빌리곤 더운 날씨를 떨치고자 유명하다는 한 냉면집을 찾아갔다. 육수는 제주 암반수를 사용하고 톳과 전복을 넣어 냉면이 맛있다고 홍보하는 집이었다. 실내엔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싸인이 가득해 기대감을 키우긴 충분했다. 기다리는 지루함에 괜히 주변만 두리번 대는데 화려한 냉면 두 그릇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두 손으로 그릇을 들어 육수를 마시곤 면을 크게 집어 입안에 채워보았다. 천천히 음미한 후 친구를 쳐다봤다. 입맛으로 한 까탈을 부리는 친구 역시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긴 설명이 필요할 때 축구를 예로 들며 설명할 때가 있다. 비유의 힘은 강력하지 않던가. 게다가 여성들은 축구 이야기와 군대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쓰니 이성에게 호감을 얻고 싶을 때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여행 후 누군가 이 냉면 맛이 어땠는지 물어본다면 스페인의 대표적 강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예로 들고 싶었다.


자국의 가장 큰 라이벌 팀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구단이 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는 21세기부터 갈락티코라는 정책을 펼쳤다. 스페인어로 은하수(Galacticos)를 뜻하는 이 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리겠다는 구단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유니폼 판매와 팀의 유명세엔 매우 효과적이었으나, 서로가 잘났다고 나서는 선수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고 팀의 밸런스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돈은 돈대로 들인 유명 선수들은 방출되고 팀은 갈락티코 2기, 3기가 진행될 때까지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겼었다. 그런데 왜 냉면 맛을 이야기하다 말고 축구 얘기나 하고 있을까.


톳과 메밀면, 육수와 전복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당연히 제주에서 음식을 파는 자영업자라면 섬의 특색을 살려 타 지역과 차별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해산물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냉면은 그냥 담백하게 냉면으로 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톳과 면은 서로의 식감을 방해했고 육수 맛은 전복의 향이 가렸다. 게다가 가격은 두 그릇에 사만 원을 넘어섰다. 서울 유명 평양냉면집 가격과 비교해도 비쌌다. 이 집은 냉면계의 갈락티코였을까.


가끔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다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음식이건 일이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행하기 어려운 일을 쉽게 말하는 나 역시 일상이 모순 그 자체다. 자신을 늘 경계하며 살아도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선 경계심이 쉽게 무뎌진다. 이렇게 여행에서라도 느낀 바가 있다면, 그 여행은 얻은 것이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아쉬운 대로 포만감을 채우고 나서야 우린 여행의 첫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는 건장한 남정네 둘을 후끈 달구며 길을 재촉했다. 가야 할 곳은 성性 박물관이었다.            




             


                   

국내에 남아있는 45기의 하르방 중 관덕정 앞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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