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엔 뛰어난 자연경관 말고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테디베어 박물관, K팝 뮤지엄, 제주민속촌박물관 등 관심사에 따라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우린 첫날 숙소를 중문에 있는 한 호텔로 잡았는데, 이동하는 중 제일 먼저 들를 곳은 건강과 성(性) 박물관이었다.
좋다는 곳은 죄다 지나치고 성인 남자 둘이 제주도에서 첫 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건강과 성 박물관. 건강이 앞에 붙어 조금 순화된 느낌이 있지만, 박물관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 민망함을 숨기긴 어려웠다. 엄연히 박물관이라도 주변을 의식하는 내 고루함은 어쩔 수 없었다.
미술 대학을 졸업하면 전시 기획자의 취향에 따라 전시 초대를 받기도 한다. 여러 단체와 갤러리에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하려 노력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 경우엔 졸업 직후 이메일로 몇 개의 단체전 초대가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이메일이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제주도 성 박물관에서 내 작업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혀를 주제로 작업을 해왔기에 관심이 이해됐다. 제안은 고마웠으나 잘 알지도 못하는 성 박물관에 선뜻 작업을 내놓긴 꺼림칙했다.
나름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워낙 의외의 제안이었기에 시간이 흘러도 기억엔 남아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친구도 호기심을 보이며 흔쾌히 이번 여행에서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방문객들이 많진 않았다. 한쌍의 신혼부부와 몇몇 중년 커플들이 보였는데 남자 한 쌍은 우리 밖엔 없었다. 친구는 외부 시선을 개의치 않았고, 나는 부끄러웠다. 가능만 했다면 내 성적 취향엔 문제가 없다는 표지라도 달고 다니고 싶었다.
박물관 앞 정원에는 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그중 내 기억과는 다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실내로 들어갔다. 입장권의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면 할인이 되기에 우린 예약 후 표를 끊고 입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이 박물관의 교육적 효과를 강조하려는 기획자의 시도가 보였다.(왜 시도라고 표현했냐면, 이것이 전시의 처음이자 마지막 점잖음이었기 때문이다.) 측벽엔 성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섹스의 어원이 라틴어 sexus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리스토파네스 신화에서 양성체 인간을 둘로 갈랐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아담과 이브의 신화처럼 원래 남녀는 하나였을까. 그렇다면 다시 합쳐지고 싶은 욕망은 저속한 것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 욕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시는 성생활의 장점도 알리려 했다. 뭔가 시장통 약장수가 연상되는 효능 강조가 자못 재밌었다. 성관계는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노화를 방지하며, 진통 효과조차 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솔로는 외로워서 죽는 것이 아닌, 온갖 질병으로 죽을 확률이 높을지도 모른다.
넘치는 정보에 지루해질 때 즈음, 새로운 공간이 보였다. 웬 초가집과 전화박스가 휑한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까운 초가집을 먼저 찾았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에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내를 쳐다볼 수 있게 창호지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들여다보니 그 안에선 첫날밤을 치르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걸까.
그 옛날 처음으로 합방하는 신혼부부를 훔쳐보던 풍속은 미숙한 신랑이 일을 그르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런 느낌보다는 단순히 관음증을 충족시키려는 공간으로 보였다. 영상은 너무 적나라하고 선정적이었다.
자릴 벗어나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수화기를 들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화기 너머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면에 자꾸 나를 자기라고 부르던 그녀는 영문모를 흥분으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곳은 이성의 음성만으로도 충분히 성적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체험 장소였다. 나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라면 충분히 불편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까지 이어지는 기괴한 성적 도구와 조형물들을 전부 감상한 후에야 왜 내 작업이 이곳에 초대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성을 주제로 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장 끝에 따로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실치곤 좁은 전시 공간이 답답해 보였지만, 박물관 소장품보다 작가들의 작품이 순해 눈이 쉬어갈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성을 대하는 박물관의 태도엔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하게 교육에 치중하거나, 놀라운 조형물들로 충격을 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구색을 갖추려는 듯 중구난방으로 놓인 조형물들은 실망스럽거나 조악했다. 다만 세계의 조각품들을 보다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이미지와 중첩돼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에는 도조신(道祖神) 문화가 있다. 마을마다 남성 성기 모양의 상징물을 세워놓고 이를 수호신이라 불렀다. 도조신은 악귀를 막아주고 지나가는 통행인을 보호해 주는 신령의 역할을 했다. 역시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나라답다. 시대가 변했어도 아직까지 도조신을 모시고 축제를 여는 곳도 있으니, 이는 꽤나 뿌리 깊은 남근(男根) 신화로 보인다. 우리로선 망측한 일이지만 이것이 문화상대성의 일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보다가 우리에게도 도조신과 비슷한 모습의 수호신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