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 있는 신흥리 해수욕장을 갔다. 이곳은 해변의 크기가 작아 주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마음 같아서야 함덕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싶었으나 번잡함이 싫어 작은 해수욕장을 선택했다. 휴식이 필요한 나는 한 마리의 해파리처럼 부유하고 싶었다. 물에 몸을 띄워봤지만 근육에 쌓인 피로가 느껴졌다. 친구도 피로가 쌓였는지 수영을 오래 즐기질 못했다.
저녁엔 함덕 해변에서 해산물로 성찬을 즐겼다. 해가 진 해변가엔 가판대가 가득했고 다양한 기념품을 팔았다. 중국 관광객이 많아 외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아쉽게도 중국어 한마디 할 줄 몰랐던 우리는 해변을 피해 한 치킨집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은 서로가 부딪히는 잔 소리조차 고요했다.
또다시 늦잠을 잤다. 여행지에선 보통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선 많은 것이 전과 달랐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고, 욕심은 더 부려 그대로 실행하기 어려웠다. 바다를 한 번은 더 가보고 오토바이도 타려 계획했으나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친구가 가만히 말을 꺼냈다.
"이만하면 충분히 즐겼으니 안 되는 건 포기하고 남은 일정을 여유 있게 보내자."
이게 문제였다. 욕심 많은 나는 어긋나거나 비어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데 서툴렀다. 얼근하게 취한 전날 밤, 숙소로 걸어가며 친구에게 '언젠가는 제주도에서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말했다. 그는 웃었다. 너는 한 주 정도는 여유를 부리겠지만, 그 안에서도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힐 녀석이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한참을 웃다가도 가슴이 한편이 서늘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쫓기듯 살게 된 걸까.
친구 말이 옳았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 일정을 대폭 축소해 김만덕 기념관 방문으로 이번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침을 거르고 도착한 김만덕 기념관은 크고 현대적이었다. 입구로 들어가자 새하얀 김만덕 조각상이 팔 벌려 우릴 맞이했다.
김만덕은 신분이 천인(賤人)인 기생이었다. 김만덕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기생의 집에 의탁하여 살다가 관기가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제주목사에게 탄원하여 양인이 되었고, 건입포구에 객주를 차려 부를 축적했다. 갑인년(정조 18년, 1794년) 대흉년은 참혹했다. 제주도민 3분의 1일이 죽었다. 조정에서 보낸 2 만섬의 구휼미는 풍랑에 침몰했고 아사자는 계속 늘어났다. 평소 사업 수완이 좋던 김만덕은 육지에서 쌀을 구입하는데 자신의 전재산을 쾌척했다. 그녀는 구입한 쌀 500 섬을 제주도민에게 나눠 주었고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다.
몇 년 전 우연히 김만덕의 삶을 조명한 방송을 보았다. 생소한 제주 여성의 일대기였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전 재산을 사람들 살리는 데 쓴 여성의 평생소원이 고작 금강산 구경 하나였다고?'
방송으로 알게 된 그녀의 삶은 기구하면서도 역동적이었다. 관기가 된 한 여성의 일대기엔 흡입력이 있었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씌워진 신분의 굴레를 벗기 위해 적극적이었고 머리도 비상했다. 의기意氣까지 넘쳐 여느 드라마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1, 2층의 체험관을 지나치고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엔 김만덕의 삶을 시대별, 사건별로 조명하는 상설 전시실이 있었다. 실내로 들어가자 현무암 돌담을 따라 그녀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었다. 돌담길을 지나치자 그녀의 표준 영정이 보였다. 매우 곱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달랐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희발은 <만덕전>에서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용모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고 가무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의로운 일에 급히 나서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후대 사람이 그린 위인의 표준 영정은 대체로 이상적인 모습이다. 쉽게 말하자면 외모에서 흠결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물을 본 적 없으니 당연한 접근이다. 하지만 김만덕 같은 위인이라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그려져도 좋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올바른 일을 한다면 위인이 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업적을 높게 샀던 채제공과 정조의 일화도 볼 수 있었다. 당시 시대상으론 천한 신분의 여성이 재물을 가볍게 여겼고, 공을 세워도 상을 사양하는 마음이 사대부보다 낫다 여겨 어여쁘게 바라봤던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사람의 평생소원이 금강산을 구경해 보는 것 하나라고 하니 어찌 그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지 않았을까. 내가 정조였다면 금강산 한 자락을 떼서라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좋은 일에 기부했던 연예인을 조롱하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돈도 많은 연예인이 기부한 금액이 적다던지, 과시용으로 기부한 것이라며 가난한 마음을 여과 없이 댓글창에 배설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책임질 가족이 생기자 전과 달라진 나를 종종 발견한다. 부끄럽지만 매년 적은 금액을 여러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 적은 돈조차도 때로는 부담이 될 때도 있다. 기부를 시작했을 때보다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말이다. 부자의 기부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간의 돈에 대한 집착을 이해한다면 기부는 어떤 이유에서건 대단한 일이고 장려해야 한다.
전시장 끝자락엔 <김만덕의 빛을 잇다>라는 공간이 있었다. 김만덕의 정신을 이어 국가나 지역 사회에 헌신한 모범 여성들의 명패를 모아놓은 곳이다. 명예의 전당처럼 아크릴 명패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어두운 공간에 은은한 조명을 비춰 보기 좋았다. 원래 숭고한 정신은 어둠 속에서 더 빛이 난다.
연도별 여성 수상자의 사진과 공적사항을 둘러보다가 한 남성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은 김선웅으로 2018년 10월, 새벽길에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가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의인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기 기증으로 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한 의로운 청년이기에 특별상을 수상한 것으로 보였다.
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에서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기념관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걸러 허기가 심했다. 고사리 육개장으로 유명한 집을 찾아가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렌터카를 반납하러 가는 길에 제주목 관아가 보였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커피를 마시며 관아를 둘러봤다. 몇 무리의 동남아 관광객들이 한복 차림으로 단체 관람을 하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행복해하는 그들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사회성은발달해 무리와 잘어울려도 보통은 타인에게 깊은 마음을 주지 못한다. 내 초라한 내면만큼이나 두려운 다른 이들의 이기심을 감당키 어렵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의로운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기념관에 놓인 상패가 증명하듯 좋은 사람은 늘 세상에 있었다. 흔한 말처럼 아직 세상은 살만한 걸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친구 옆모습을 보았다. 세상 좋은 사람의 얼굴을 한 그는 언제라도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 줄 것 같았다. 변덕 심한 친구를 포용해 주는 그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아직 가야 할곳이 많다. 여행 좋아하는 재주 좋은 우린,못 가본 곳이라면 또다시경주하듯달려갈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