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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Oct 08. 2024

방주 교회, 믿음의 현현

미술교사의 제주도 여행에세이 8 

알람 없이 눈 뜨는 아침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드러운 베개의 촉감도 이미 깨어버린 몸을 다시 재우진 못했다. 휴대폰을 꺼내 어제 찍은 여행 사진을 아내에게 전송했다. 아이들 안부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간밤의 소식을 살펴봤다. 내 기척에 친구가 잠을 깨자 늦은 아침이 시작됐다. 우린 번갈아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싼 후 숙소에서 나왔다.


지난 여행 때 찾았던 칼국수집에 다시 방문해 아침 식사를 했다. 보말 칼국수로 유명해져 분점도 차린 곳인데, 보말죽도 그에 버금가게 맛있어 친구와 든든한 한 끼를 나눌 수 있었다. 해는 식사하는 동안 뜨겁게 차를 달궜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차 내부 온도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잠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제주도가 느껴졌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도 커피에 담겼는지 짠내와 옅은 고소함이 바다처럼 입안에서 펼쳐졌다.




차를 몰아 안덕면에 있는 방주교회로 갔다. 방주교회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교회로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든 종교 건축물이니 방문할 가치는 충분했다. 자본이 집약된 예술이 건축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한동안 고층 건물 하나 없는 벌판을 지나자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교회를 바라봤다. 평소 집 근처에서 보던 대형 교회는 아니었다. 방주 형태의 아담한 교회는 빛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이는 교회의 지붕 때문이었다. 흑과 백의 삼각형이 서로 맞닿아 끝없이 이어지는 패턴의 지붕은 크리스털 잔처럼 영롱한 빛을 냈다.


전체를 보니 얕게 고인 물 위로 방주가 떠있는 형상이었다. 교회는 믿음 없는 자를 구원하고자 한 걸까. 내부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문은 열려 있었다. 우리처럼 기독교 신자가 아닌 방문객들에게도 출입은 허용됐다. 방주는 엄숙한 침묵으로 우릴 지켜봤다. 믿음이 어떻게 시각화됐을지 알고 싶었다. 입구 가까이 있는 예배당은 작았다. 홀로 기도를 하는 신자가 보여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십자가 위 작게 뚫린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빛은 하늘에서 왔으니 신의 응답이 간절한 어린양들은 그 따스함에 하느님의 눈길을 느낄 것이다. 지붕을 받치는 원목의 궁륭은 측벽과 이어져 오각형을 이뤘다. 이 구조는 몇 십 개가 띠처럼 반복돼 신자의 시선이 정면의 십자가 쪽으로 집중되는 효과가 있었다. 반대로 목사의 입장에선 강론이 힘 있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잠시 머물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남겼다. 건물 자체가 아름다웠다. 나는 건물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탁 트인 평야에 홀로 떠있는 방주의 모습엔 기품이 느껴졌다. 이 또한 이타미 준의 의도였을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란한 믿음보다 고요한 그 믿음이 평화롭다.


교회가 있음으로 신이 깃들 장소가 생긴다. 신도는 교회의 아름다움에 한층 더 믿음이 공고해진다. 믿음은 마음에서 싹트지만, 물을 주는 것은 교회 자체다. 따라서 앞으로도 시대 문법에 맞는 다양한 모습의 교회가 생겨날 것이고, 방주교회는 그 대표적 예가 될 수 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커플이 교회를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풋풋한 모습이 보기 좋아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제안했다. 커플과 교회를 한 화면에 담고자 자세를 낮춰가며 예술가의 혼을 담았다.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던 커플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확인하곤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는 아직 갈 곳이 많아 서둘러 차에 탔다. 우린 다음 목적지인 더럭 초등학교를 향해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선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가 울려 퍼지고, 내면의 흥을 참지 못한 아저씨 둘은 굵은 목소리로 원곡을 재해석했다. 세상에 나와선 안 될 새로운 버전의 푸른 산호초는 그렇게 도로 위에서 탄생했다.        







지난 경주 여행에서 극찬했던(우린 경주하듯이 08화 참고) 경주타워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선작이 이타미 준의 공모 출품작을 표절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12년의 긴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이타미 준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에 작고한 이타미 준은 그의 작품이 표절당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다. 뒤늦게라도 유족은 고인의 명예를 되찾았고, 경주타워는 재조명받았다.     

    


<믿음은 무엇인가?>  2024. J.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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