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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광현 Oct 15. 2024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더럭 초등학교

미술교사의 제주도 여행 에세이 9 

90년대는 공교육을 비판하는 노래가 많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를 들어보면 그 시절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가사엔 교실이 사방 꽉 막힌 시커먼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학교가 덥석 우릴 먹어 삼킨다는 부분에선 사회적 반향도 컸다.


지금도 그 이미지가 통용되는지 모르겠으나 당시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던 가사였다. 학교는 분명 답답하고 억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학교는 교육적 공간 말고도 전쟁을 대비하여 병영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교실(내무실), 군출신 교사(교련), 단상(구령대), 운동장(연병장), 철봉 놀이터(유격 훈련장) 등 학교에서 느껴지던 중압감엔 근거가 있었다.   




더럭 초등학교는 애월읍 하가리에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알록달록 귀여운 색상의 초등학교가 보인다. 안 그래도 학교가 지겨울 법한 교사가 굳이 시간을 쪼개 초등학교를 방문한 이유가 있다. 2017년까지 분교였다가 2018년에 본교로 승격된 더럭 초등학교는 폐교까지 거론됐던 졸업생 적은 학교였다. 잔디 운동장이 조성되고 색채디자이너 장 필립 랑글로(Jean Philippe Lenclos)가 참여한 외관 디자인이 대중의 관심을 끌며 유명해졌다. 자연스럽게 학생 수도 늘었다. 좋은 건축 디자인으로 학교 이미지가 좋아졌다 하니 기회가 될 때 직접 보고 싶었다.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문 앞엔 정낭이 있었다. 제주는 역시 뭔가 다르다. 정낭은 제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대문이다. 두 개의 현무암 사이 놓인 나무 기둥의 개수로 집주인의 출타 여부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예컨대 세 개의 나무 기둥이 얹혀 있으면 멀리 갔음, 하나도 없으면 집에 있다는 뜻이다. 낮은 담장과 정낭이 보여주는 제주도의 인심엔 경계심이 느껴지질 않는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중앙의 넓은 잔디 운동장과 레고블록 같은 단층 건물이 보였다. 본관으로 보이는 건물 역시 3층 정도의 저층이었다. 건물 벽에 칠해진 난색 위주의 다양한 색상이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곳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며 지낼까.




30대 초반 잠시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했다. 그 당시 어학원의 연결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대상 수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처음 본 뉴질랜드 초등학교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럭비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잔디밭이 매우 넓었으며 단층의 아기자기한 건물에선 아이들이 재잘대고 있었다. 교실에서 나가면 바로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붙어 있었다.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가 한국의 놀이 문화를 알려주는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교실 바닥에 앉아 수업에 참여했다. 뒤편엔 책상에서 수업을 듣는 공간도 따로 나뉘어 있었다. 이민의 나라답게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인종은 다르지만 티 없이 해맑은 모습은 같았다. 아이들은 우리나라 전통 놀이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며 서로 대답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기회를 받지 못하면 끝까지 팔을 들고 내 눈을 쳐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고 쑥스러움도 없이 저마다 의견을 발표했다. 친구 의견을 경청하며 서로 칭찬하는 모습엔 경쟁심이 보이질 않았다. 무엇이 뉴질랜드의 교육을 다르게 만든 것일까.




벤치에 앉아 친구와 더럭 초등학교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우리 학창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는 한갓진 시간을 보내는데, 화단을 가꾸던 여성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공간이라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며 정중하게 퇴장을 명령했다. 아뿔싸. 7월 중순이라 당연히 이곳도 방학 중이라 생각했다. 민망함에 사과를 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떠났다. 축객령이 미안했는지 떠나는 우리에게 아이들 안전을 위해 양해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해가 필요 없는 당연한 말이었다.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부주의함이 부끄러웠을 뿐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푸근한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백반을 주문하고 좌식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이곳은 도시의 소음 하나 없이 한가로웠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 제주에서 살 결심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효리가 될 수 없었다.     


서울의 초등학교 마저 학급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한 반의 정원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학폭 사례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부모와 아이들 모두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우리 아이들을 각박하게 몰아가는 것만 같았다. 어느 예비부부가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싶을까. 아니 젊은 세대에겐 결혼조차 사치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있는 학교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더하여 아이들이 경쟁보다 협력을 먼저 배우고, 입시 중압감에 휘청이기 전 자존감을 먼저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는 바랄 게 없지 않겠는가. 자녀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말은 아이들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남과 다른 자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재능이 넘치면 나눠줄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은 도움받아도 자존감 떨어지지 않을 개별체로의 성장을 돕는 일이 진정 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짧은 인상으로도 뉴질랜드와 제주도의 교육 환경은 능히 그럴 수 있어 보였다.  


요즘 전국에서 노후화된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공사가 한창인데, 새롭게 만들어질 공간에 대한 교사들의 의견이 오랫동안 모아졌다. 아이들이 학교를 친숙하게 여기고 시설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학교는 더 이상 답답한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국물을 떠넘기고 고기를 씹어도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밥 먹을 땐 밥에 집중해야 하는데 잡다한 생각으로 여행지의 소중한 한 끼를 즐기질 못했다. 상념을 지우고 다시 젓가락으로 나물을 집어 입에 넣는데 친구가 입을 열었다.







"이 집은 간을 진짜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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