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세상을 떠났다.(시리즈 1)

남겨진 나 로 살아가기

by You앤Me Art Place

죽음.

그것이 현실처럼 내 코앞에 다가온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내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동갑내기인 그는
교회에서 기타를 치던 풋풋한 청년이었고
나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리둥절 불안해하던 유학 초기 시절이었다.
이른 아침 신문 배달을 하고도 언제나 환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가 생각난다.

나도 신문을 돌리고 싶은데... 속으로만 몇 번을 생각했지만, 빗길에 신문을 쏟고 다 젖은 무거운 신문만큼 그 값을 물어내야 했다던 그의 자랑 같은 에피소드에 나는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신문배달 생각은 바로 접었다.

당시 나는 교회 편집부에 속해 있었고 그에게 글을 하나 써 달라 부탁했는데 마침 그는 기타에 붙일 멋진 스티커가 필요하다며 나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었다.
서로 몇 주를 미루다가 그날은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새벽 신문을 돌리다가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누워있음을 알게 되었다.
설마... 하는 불안을 깨고 삼일 후면 그가 다시 돌아올 줄 알고 기도했지만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도 처음이고 일본의 장례식은 더더군다나 처음인데 감정이 뭐가 뭔지 모르겠던 나는, 나무관에 누워 얼굴 부분만 유리창으로 만들어 보이도록 해 놓은 그 모습을 가족 아닌 내가 특히나 여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굳이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다니...
그래야 실감이 날 것 같아서였다.
낯선 그의 얼굴엔 영혼이 없었고 내 마음도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함께 신문을 배달하던 앳된 얼굴에 검정 슈트를 입은 일본인 청년들이 침울한 얼굴로
종이학을 잔뜩 접어 젓가락처럼 차례로 들어오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종이학...

별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와 그간의 사진들이 들어있는 앨범을 펼쳐 그를 찾아내어 기억해 보았다. 다소 충격이었던 유리관 속의 얼굴 때문인지 생전의 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유심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단체 사진 속에 그룹 사진 속에서 그가 언제나 내 뒤, 아니면 바로 옆에 슬며시 한 두 손가락을 내 어깨 위에 티 나지 않게 살짝 얹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사진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어쩌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나는 참 무심했구나.
그렇지만 그의 장례식에서 우린 한국에서 급히 날아온 그의 여자친구를 약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게다가 누군가는 그녀가 약혼녀 라고 했고 그녀가 등을 철저히 돌려 고개 숙여 흐느끼는 통에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지만 분명 특별한 관계인 것 같은데...

장례가 끝나고 천천히 그를 슬퍼할 마음이었던 나는 슬픔을 뒤로 한채 수수께끼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자꾸만 올라왔다.
당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하는 마음 없이 그저 어떻게 하면 쉽지 않은 이 시절을 살아낼까에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사해야 할 때 즈음 그는 언제나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이사할 때 꼭 말하라고 신문배달 회사의 차를 빌려서 도와주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었지. 때론 식사를 했냐고도 자주 물었고. 실제로 이사를 도와줬던 기억이 나는데 뭘 어떻게 도와줬는지 다른 기억들과 뒤섞여 잘 생각이 나질 않으니 나는 온통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어떻고 또 저러면 어떤가. 그는 떠났고 명문 학교에 붙어 기뻐하던 게 엊그젠데 아까운 그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그는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다 보니 새삼 그의 마음이 궁금하다. 마음을 몰라 줬다면 지금이라도 미안하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호감이 생길 일이 없을 터이지만,
눈앞의 내 길을 가느라 급급해서 다른 이의 마음을 볼 여유도 틈도 없던 불안한 경주마 같던 나였기에 후회가 된다. 주변도 좀 알아차리고 살아볼걸 외딴섬에 홀로 뜬 배처럼 나는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녀와 결혼해서 성공한 채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에는 대부분 조부모가 돌아가셨다거나 멀리 아는 친척분이 돌아가셨다거나 하는 정도이고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가 죽음을 맞는 것을 보는 일이 흔치 않아서 나는 한참을 그저 멍하니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충격을 받고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그때 알게 된 한 가지는 죽음이 결코 먼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깨달음.

죽음.

죽음을 배제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는 겸손과 여유 그리고 방향이 있는 것 같다.

*게재된 사진과 그림은 제가 찍고 그린 것 입니다*

keyword
이전 06화나의 사랑하는 생활(시리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