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생활(시리즈 2.)

피천득처럼.

by You앤Me Art Place

나는 언제였을지 모를 기억들을 떠올려 추억하기를 좋아한다.


밤이면 총총히 빛나던 밤하늘의 차디찬 공기와 말할 때마다 입으로 나오던 하얀 입김을 좋아한다.
그럴 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고 가끔 러시아에 가서 두툼한 그 모피 털모자를 쓰고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는 상상을 한다.
추운 것은 끔찍이도 싫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오싹 해지는 차가운 겨울 공기는 가끔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의 그림과 시를 좋아한다.
사소한 제목들로 재밌게 써 놓은 아이들의 시를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미간이 풀리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디에서 그런 생각들이 나오는 건지 하는 말들도 그렇고 표현들이 참 섬세해서 읽고 또 읽게 된다.
아무도 의식하고 않고 쓱쓱 그린 낙서 닮은 그림들을 보노라면 자유로운 야생마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기분이 이런 기분 일까 싶을 만큼 감정과 생각이 풀어짐을 느낀다.

나는 할머니들의 쪼글한 손 감촉이 좋으며 그 손을 쓰다듬고 있으면 세월이 장난꾸러기처럼 훑고 지나갔음을 느낀다.
그 손에 낀 금가락지를 빼서 내 손에 끼어 볼 때면 나이 들어 나도 이렇게 되려나 싶어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그림 그리는 아이들과
전시회를 여는 것을 좋아하며 그 그림이 좋아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성의껏 꽤나 진지하게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손가락 한두 개로 치는 별것 아닌 피아노의 선율이 좋으며 특별히 넓은 공간에 울려 퍼져 한가득 그곳을 채우는 묘한 매력에 빠져 들 때면 차분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땐 계속 머무르고 싶고 이불을 펴고 누워 잠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맺힌 거미줄의 아롱거림이 마치 진주 목걸이의 진주알 같고 영롱해서 부지런씨 거미의 얼굴이 무척 귀엽게도 보이곤 한다. 그것들을 들여다볼 때 나는 행복하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냄새. 나무가 타는 냄새 그리고 일정하지 않게 티디딕 소리 내며 은근히 피어오르는 불꽃. 어쩌면 여름밤 풀벌레 소리들과 그리 잘 어울리는 걸까. 싫어하는 모기를 귀찮아 한 손으로 쫓으면서도 자리 뜰 줄 모르고 한없이 불 앞에 앉아 꼬박꼬박 조는 것을 좋아한다.
불꽃놀이. 아 불꽃놀이. 나는 불꽃놀이를 놓치지 않고 즐거워한다. 불꽃이 터질 때를 기다려 남들이 우와ㅡ하고 감탄할 때 혼자 아랑곳하지 않고 꺄아악 꺄아악 질러대 놓고 또 몇 번을 까르르까르르 웃는지 모른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공짜가 있을까 싶다.

나는 전철이든 기차든 차창밖으로 흩어지는 들판과 나무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 풍경들을 좋아한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전철이 흔들림 없이 스ㅡ윽 지나갈 때면 살아서 그 광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순간을 깊숙이 간직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기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예쁜 스티커를 꼭 맞게 붙이고 받는 이가 얼마나 기뻐할지를 상상한다. 넉넉하게 아니 푸짐하게 용돈이 있다면 나는 각각 다른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사서 누구보다 멋지게 포장해서 함께 소포로 보낼 텐데... 전달하는 우체부 아저씨까지 기분이 좋아지겠지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한다. 어릴 때 소원이 커서 싼타 클로스가 되는 거였으니 나는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서점에서 어슬렁 거리는 것을 나만의 여유라고 생각하고 서점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별한 냄새를 맡으며 괜히 관심도 없는 책들을 이 책 저책 펼쳐보고 고상한 척하기도 하고 조용히 책 읽는 사람을 보면서 대단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점에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특별히 새로 나온 팝업북을 발견하고 비싼 돈 주고 살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나는 머리맡에 아기자기한 곰돌이 인형들을 좋아한다. 한 마리 한 마리 소중하고 사연이 달라서 가끔씩 빨아 햇볕에 널 때 빨랫줄에 매달린 곰돌이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곰돌이 인형을 사주게 된다. 공원이 마치 내 것인 양 그릇들을 싸가서 접시까지 셑팅 해놓고 집에서 준비해 간 밥을 잘 차려놓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비좁은 집대신 넓은 공원은 나의 정원처럼 자랑스럽다.

한낮에 길목에 늘어져 졸고 있는 고양이가 좋으며 예쁘게 손질한 강아지들이 지나갈 땐 감탄을 마지않는다. 내가 키우지 않고도 수고 없이 귀여운 동물들을 볼 수 있다니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어느 겨울 인사동 전통 찻집에 앉아 친숙한 선생님과 유자차를 마시며 눈발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각인이 되었는지 두고두고 떠오르는 몇 안 되는 장면 중의 하나다. 그런 특별한 기억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는 그런 생활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아이들과 늦잠을 자고 일어나 게으른 점심을 라면으로 먹는 것을 사랑하고 한껏 치장하고 나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경복궁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는 언제든 어떻게 만나져도 행복하며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웃고 떠들고 한껏 들떠서 소란하게 된다.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모여도 흩어져도 특별한 추억으로 가슴을 채워주는 신비로운 존재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소박해도 좋고 넉넉해도 좋고 부족해도 좋은 나의 사랑하는 생활. 그 어떤 순간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추억 그리고 만족.

*게재된 사진과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리고 찍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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