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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l 16. 2024

무사하지 않다는 소식이라도

무사하지 않다는 것으로 간신히 무사하다고 소식 전합니다 오늘은 막힌 변기와 친하게 지냈고 마침내 양변기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싸준 묵은지 한 포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으며 밥에 대한 내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무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이것이 무사하다는 전갈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부엌 쪽창에 얼 비치는 내 그림자를 보면 자꾸 엄마 하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음악가에게 망원경을 주면 우주의 비밀에 대하여 작곡할 수밖에 없다는데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쥘 게 없는 손으로 주먹을 쥐는 나날입니다 도저히 악의적일 수가 없는 호칭을 등에 업고 늦은 밤에 양말을 갭니다 양말에게 짝을 찾아주는 일 정도가 가장 어울리는 나에게도 스웨터에 오래 매달리다 보면 동그란 보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김소연, 스웨터의 나날, <i에게>)


쓰러지신 선생님 소식을 들었고, 6개월에서 1년 집중치료를 받으셔야 한답니다. 뇌경색에 골절상도 함께라서 위중하셨다고 합니다. 여전히 답을 보내실 수는 없지만 문자를 보냅니다. 읽었다는 표시가 있지만 선생님의 것인지 식구 분들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자가 선생님을 괴롭게 할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스트레스를 드리는 건 아닌지… 와중에 마감을 했고 시작메모를 썼습니다. 새로운 시를 보냈어요. 모두의 아니 우리의 아니 각자의 안부를 묻는 시입니다. 선생님 생각하면서 썼어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아니 약간의 소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로, 응원, 기도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시 빈 벽 앞에 선 아침. 무사하다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님이 직접 보내시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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