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95
‘행복(幸福)’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욕구가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한다.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 또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이다. 幸(다행 행)은 죄인에게 채우는 수갑의 형태로 극형에서 벗어나 수갑을 차고 감방에 가는 것이 다행이라는 의미에서 ‘다행(多幸)’, ‘행복(幸福)’, ‘행운(幸運)’ 등을 뜻한다. 福(복 복)은 잘 차린 제사상(豊)으로 제사(示)를 지내 하늘에서 내린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복(福)’, ‘행복(幸福)’을 뜻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한 이후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 두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철학자가 인생의 목표나 목적으로 저마다 서로 다른 행복의 개념을 설파했다. 그 영향으로 지금까지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가치관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동양의 음양 사상에 따르면, 행복과 불행은 번갈아 온다는 통찰이다. 그러므로 행복만 있는 삶은 없으며, 불행만 있는 삶도 없다. 행복 속에서도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이 있다. 인간이 행복만을 추구하려는 행동은 성취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말이다. 인간은 행복도, 사랑도 계속 반복되어 끊이질 않기를 소망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행복하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감당할 수 있는 대로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에 따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함을 우선으로 말한다. 행복도 유전으로 결정된다면 믿겠는가. 그런 연구 결과가 있다. 행복에 관한 연구를 분석한 결과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 환경적 변수들은 모두 합쳐도 개인 간의 행복의 차이는 15%밖에 안 되며, 유전이나 성격으로 전체의 50%를 설명할 수 있단다. 즉 개인 간 행복 차이의 반은 유전이란 말이다. 믿고 싶지 않은 결과지만 성격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필요 조건으로 두 가지 자원이 있다. 첫째는 외적 자원인 경제적 자립이다. 인생을 성찰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내적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서 개인은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사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개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교육과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행복의 일 순위로 꼽는 것이 경제적 자유다. 최소한의 경제적인 충족이 이루어져야 살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 얼마나 많으냐는 행복을 높여주는 조건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연봉 1억 정도까지는 행복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돈은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해소해줌으로써 행복한 삶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행복을 물질, 즉 돈으로만 측정하는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아직도 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팽배해 있다. 하지만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 경험 등은 분명 행복을 증진하는 데 이바지함에도 사회적으로 충분한 연구와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민하는 삶을 영위하기에는 너무 바쁘고 고단하다. 일단 모든 것들과 교환할 수 있는 돈을 모아놓고 보자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유다.
둘째는 내적 자원인 인생을 이해하는 힘이다. 내적 자원은 자기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의 자원, 정신 능력과 같은 의미이다. 자신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행복을 얻고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정신적으로 자립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행복의 기본은 삶의 기둥이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인이나 가족도 다 내가 아니고 타인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고 지나치게 의존하면 부담스럽고 성가신 관계가 된다. 어떤 관계든 서로 기대지 않고 사람을 대해야 즐겁고 편안한 법이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의존은 결국 커다란 실망감을 안긴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서로 상처 주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누가 뭐라 하든 관심 끄고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어 자기 삶을 산다. 타인이 규정해놓은 기준에 끌려다니지도 않으며, 자신이 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줄도 안다. 남편과 자식들 챙기느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미루지도 않는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고, 배우고 싶은 것은 배우고, 식당에 가더라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주문한다. 자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인생을 독립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어 간다. 나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지 말고 손님처럼 대접해주어야 한다. 나의 마음이 편한 쪽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스스로 행복을 찾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위해 그것을 찾아주지 않는다. 내 삶의 방관자 관점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온전히 자기 자신만이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를 측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감정을 측정하는 일이기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행복 기준이 있는 사람이 힘든 상황이 와도 덜 흔들리게 된다. 다른 사람이나 일반적 사회의 행복 기준에 맞추어 행복하려니 가랑이가 찢어지고 흔들리는 것이다.
획일화되고 집단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행복 기준이 설정되어, 부합하지 않으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행복에 대해 부정하는 경향이 심하다. 많은 행복의 척도들에서 우리나라가 경제적 위치보다 훨씬 후 순위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사 대상의 기분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웰빙지수(147개국 중 117위), 행복지수(OECD 최하위), 행복 체감지수(50위권) 등이 삶의 질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데 위안 삼는다. 사실 인간의 감정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 국민의 반 정도가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있다.
행복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행복도 이성(理性)보다는 본능과 무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고,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행복이 생존이라는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이론이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는 것, 잠을 자서 체력을 보충 것,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이성과 친해지는 것, 생존을 위해 관계 맺으며 사회를 이루며 사는 것,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는 것 등의 행동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도 모두 생존과 번식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불편하지만 맞는 것도 같다.
행복의 최대 조건은 우리의 눈높이와 비교에 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인 것이다. 나의 기대를 낮추면 만족도가 높아져 행복해지고,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커져서 불행해진다. 나보다 나은 상대와 비교하면 불행해지고, 낮은 상대와 비교하면 교만해진다. 꼭 비교하고 싶다면, 상대와 비교하지 말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인생은 지금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더 나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10년 후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은 유보되지도 저축되지도 않는다.
행복은 있느냐 없느냐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의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을 바라보는 긍정의 힘에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이 행복하고,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