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일? 내 일. 네일, 매일!

네일 아티스트

by 박나킨
" 보고 싶어. 지금 와주면 안 돼?"


우울증이 깊어지던 어느 날,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알기에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주말에 볼 거잖아. 택시비 아껴서 맛난 거 사 먹자. 오늘은 좀 참아."


예상대로, 흔들림 없는 대답이었다.


중국과 한국,

장거리 연애가 2~3년, 주말 연애가 3~4년.

애매하게 길고, 애매하게 끝난 7년.

11월에 시작해, 1월에 끝났으니 결국은 꽉 찬 5년이겠지?


사랑은 애틋했지만, 모자 디자이너로서의 나는 산산이 부서졌다.

중국에서의 스카우트 제안은 달콤했으나, 곧 실험 같은 나날이었다.


"맘에 안 들어. 왜인지는 나도 몰라. 다음에 얘기하자."


수십 개의 샘플은 이유도 설명도 없이 거절당했다.

언어도, 사람도, 문화도 없는 낯선 땅에서 나는 무인도에 떨어진 외계인 같았다.


'어디가, 왜, 어떻게'가 없었다.

'그냥'이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뭐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이 지배할 때쯤 만난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도 관계도 사람도 표면상은 좋게, 마무리하였고,

그와의 썸과 마음도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아직도 장래희망과 미래, 먹고살 걱정을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끝, 다음에는 또 시작이 필요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그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와 사이버러브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만약 내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면?

혹은 돌아가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지?"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이었다.

모자업계의 제안은 이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때 떠올랐다.


"기술을 배우자. 어디서든 살아남을 기술."


미용? 마사지? 요리? 그리고 네일.

손이 야물고 꼼꼼하다는 건 내 무기였다.

캐나다에서도 네일숍은 늘 북적였고, 중국 역시 뷰티 산업이 커지고 있었다.


"네일이라면, 어디서든 굶어 죽진 않겠지."


낮에는 아동복 쇼핑몰 직원, 밤에는 네일 학원 수강생.


하얀 액체, 큐티클리무버를 뿌린다.

푸셔로 손톱 위를 밀어주면 때처럼 밀려 덩어리를 이룬다.

그걸 작은 가위인 니퍼로 살을 자르지 않고 반달모양으로 예쁘게 라인을 따줘야 한다.

매니큐어, 즉 폴리쉬로 프렌치네일, 풀칼라까지 발림 기술을 배운다.

아크릴과 인조 손톱으로 연장하는 법도 배운다.

각질관리, 쉐잎 잡는 법, 트렌드 디자인 등 다양한 기술등을 배운다.


생각보다 많은 공부와 기술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설렜자.

이 기술만 있으면 천하무적이 될 거야.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백화점마다 입점한 큰 프랜차이즈 네일숍에 취업.

나이가 가장 많은 신입의 첫 출근이었다.


첫날부터 문제였다.

수전증도, 알코올중독도 없었는데 손이 떨렸다.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손끝은 벌벌 떨려왔다.


신입이라 발 각질 담당이 되었다.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씩 발을 매만졌다.

손톱을 잡는 순간에도, 손은 떨렸다.


"언니, 신입이죠? 저 경력자분으로 바꿔 주세요."


손님의 말은,

말은... 머리로 이해가 됐다.

맘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잡아채고 재빨리 일어났다.


캐나다에서의 인종차별,

중국에서는 언어 장벽,

쇼핑몰, 호프집, 고깃집, 텔레마케팅... 많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이 순간.

이 한마디가 더 쓰라렸다.


매출은 천만 원을 요구했지만, 월급은 70만 원 남짓.

고참조차 200을 넘기기 힘든 구조.

노동의 강도, 스트레스, 수입...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달간,

발 각질담당과 매일 100개가 넘는 인조손톱의 연습도 소용없었다.

떨리는 손으로는 더 이상 손님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묻는다.

네일은, 정말 내 일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실패였을까?


하루가 끝나면,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네일은 내 일이 아닐지라도,

내일만큼은, 또 다른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마치 사랑처럼.

너도 내가 아니었고,

나도 네가 아니었음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뜰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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